김정일에 주체사상 직접 지도한 北 권력 핵심인사
  • ▲ 10일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연합뉴스
    ▲ 10일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연합뉴스

    황장엽(87)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10일 오전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가운데 지난 6월 북한 정찰총국이 “황장엽이 당장 내일 죽더라도 자연사하게 놔둬서는 안된다”며 공작원 2명에게 살해지시를 내렸던 사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北, 지난해 11월 살해지시 내리기도

    지난 6월 4일 서울중앙지검은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살해하라’는 지시를 받고 탈북자로 위장, 남파된 북한 공작원 김모씨(36)와 동모씨(36)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황씨를 암살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위장 탈북 이후, 소재 파악을 한 뒤 ‘살해’하겠다는 3단계 계획을 갖고 내려온 것. 이들은 지난해 11월 김영철 정찰총국장으로부터 “황장엽이 수뇌부와 체제를 비판하는 도가 지나치다. 민족의 반역자 황장엽을 처단하라”는 말과 함께 살해지령을 받았다. 특히, 고령인 황씨가 건강상의 이유로 자연사 하기 전에 살해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운의 망명객’ 황장엽은 누구

    이처럼 북한이 황장엽에 주목한 사실은 무엇 때문일까. 황장엽 전 비서는 북한의 통치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사의 이론을 닦은 사람이다. 김일성종합대학의 총장을 지내며 김정일의 주체사상 개인강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1997년 2월 망명 당시 직책은 노동당 중앙위 국제담당 비서였다. 이외에도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 등 최고위층에 해당한다. 1994년 김일성 사망시에는 장의위원 명단에 26위로 오른 바 있다.

    1934년 2월 17일 평양서 태어나 1949년 모스크바대학 철학부를 졸업한 소련 유학파인 그는 1970년대 주체사상을 체계화해 김일성주의로 발전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1997년 황장엽은 “북한 지도부는 변화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한국행을 결정했다”며 망명길에 올랐다.

    망명 당시 우리 정부로부터 ‘남한에서의 북한 민주화 운동 보장’을 약속받았으나 대북 유화정책을 추진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활동이 제한되자 ‘비운의 망명객’이라 불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