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인은 상대적으로 일반인에 비해 윤리적인가?”
    한국선진화포럼 제 47차 월례토론회 발제자 인제대 이기효 보건대학원장이 제기한 물음이다.
    지난 7월 21일 부산시청에서 한국선진화포럼은 ‘서비스 산업 선진화와 일자리 창출’을 주제로 제 47차 월례토론회를 열어 투자개방형 병원의 당위성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이날 논의 주제인 투자 개방형 병원이란 의료업의 진입제한을 풀어 일반인이나 회사에 자본 투자를 개방하는 것으로, 자본 투자로 병원을 오픈하고 의사들을 고용 해 의료업을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프랑스는 전체 병원 수 중 36.8%, 독일은 29.7%, 싱가포르는 27.4% 정도가 투자개방형병원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투자 개방형 병원 도입 논란의 단초는 현 의료법이 개정된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개정된 의료 법 안은, 의료인에게는 영리병원 설립이 허용되는 반면에, 일반 시민과 상법상 회사는 이를 개설할 수 없도록 차별적 진입제한 규제를 부과하고 있다. 의료인들은 보다 윤리적이며 그 수익을 의료업에 재투자할 것이라는 입법자들의 믿음에서 비롯된 까닭이다. 그러나 의료법 개정 이후 현재 약 40년이 지났다. 뽕나무가 푸른 바다가 될 정도 로(桑田碧海) 대한민국의 의료서비스 상황은 당시 입법자들의 믿음을 이어나가기 어려워질 정도로 변했다.

    먼저, 의료인은 더 이상 윤리적일 수 만 은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의료서비스의 영리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1963년 제정된 의료보험법은 1989년에 도시 지역 의료보험이 실시되게 됨에 따라 전 국민 의료 보 험 화를 이루게 되면서 의료행위에 대한 보험자와 정부의 감독과 규제가 강화되었다. 그 결과 의료법 개정 당시인 70년대에 비해 이윤이 풍족하게 보장되지 않게 됐으며 의료인이 설립한 영리병원의 규모도 점점 커져 영리 의료기관이 단지 의료인의 진료공간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독과점형태로 변했다.

    실제로 의료비 부당 청구의 사례를 보면 ‘의료서비스의 비 영리성’은 상당히 관념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종합전문병원 44개중 상위 5개에 해당하는 의료기관이 전체 진료비 청구액의 33.5%를 차지하고 있으며 올해 6월까지 부당청구 환수금액이 가장 많은 곳은 서울대 병원(2억946만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1억9692만원), 서울아산병원(1억8493만원), 부산대학교 병원(1억2729만원), 가톨릭 서울성모병원 (1억3,07만원) 순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5대 메이저 병원이 기본적으로 인프라 구축이 잘 되어있고 서울 소재 병원들을 더 선호하는 국민들의 인식에서 비롯하는데 양질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증가하면서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부 병원으로 국민들이 쏠리는 현상을 보여준다. 

     이것은  당시의 입법자들의 의료서비스 재투자가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을 소박하게 꿈 꿀 수 있는 체제가 아닌 것임을 또한 보여준다. 1970년대의 입법자들은 의료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투자재원이 거의 없던 상황에서 의료업을 통해 얻은 이익이 외부로 유출되지 못하게 하고 의료업에 재투자되는 여건을 조성하자 취지의 믿음을 공유했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로 확대재생산을 위한 충분한 이윤의 확보가 과거와 같이 쉽지 않고  현 의료법의 골자인 영리병원의 차별적 진입규제가 소비자들의 의료 서비스 요구 증가에 대해 공급자의 입장에서 투하 자본이 더욱 증가해야 하는 목적성을 제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영리법인을 설립할 수 있는 개인 의료인에 의한 투자 재원 조달은 상당부분 한계에 직면하게 되어 몇 가지 거대 메이저 병원만 쏠리게 되는 현상을 낳고 있으며 또한 이와 동시에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거대 병원에 대한 기대는 비대칭적인 의료서비스양태의 가속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                      

    지난 2005년 ‘허준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 라는 책이 출판됐다.
    한의계와 양의계가 공존하는 대한민국의 양 원 화 된 의료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어느 양의사에 의해 쓰인 책이다. 그러나 본래의 저작 의미 말고 현재 투자 개방형 병원도입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하여 ‘허준이 죽어야 한국 의료가 산다.’라고 재 명명하고 싶다.
    허준이라는 명의가 표상하는 철저한 직업의식과 인간애는 물론 배워야 한다. 그러나 하등의 재정적 고려 없이 비영리적이며 윤리적인 의료인 이미지의 고착은 의료인 스스로 역할갈등을 초래하며 과거 케케묵은 구습의 의료법을 지속하게 하고 있다.

    기업을 존재하는 목적이 사회공헌이 아니라 이윤추구이듯, 병원의 존립 목적 또한 대국민의 건강이 제 일 순위 가 아니라 이윤추구다. 구습의 의료법이 명시하고 있는 의료기관 차별적 진입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영리성을 목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산업화 할 수 있다는 전제를 국민 전체가 공유해야 이야기가 된다.
    허준이 죽어야 한국 의료가 산다.        

  • <김숙 / 한국진화포럼 NGL / 이화여대 정외과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