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 황제의 밀사 ⑲ 

     여비가 모자랐으므로 이중혁과는 로스앤젤리스에서 헤어져야만 했다.

    「형님, 꼭 대업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역까지 배웅나온 이중혁이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말했다. 목이 메인 내가 머리만 끄덕였을 때 옆에 서 있던 신흥우가 혀를 두드렸다.

    「아, 미국 땅은 넓지만 얼마든지 다시 만납니다. 여기서 조선처럼 일본놈들한테 잡혀갑니까?」

    그때 이중혁이 주머니에서 종이에 싼 뭉치를 내밀었다.
    「형님, 이것 받으시오.」
    내가 눈만 크게 떴더니 이중혁이 내 코트 주머니에 뭉치를 쑤셔 넣었다.

    「안되어.」
    그것이 돈임을 깨닳은 내가 정색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이중혁이 내 팔을 움켜쥐었다. 눈물에 젖은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형님, 저는 이곳 미션하우스에 묵을 수도 있고 곧 셔만 부인께서 기숙학교를 소개시켜 주신다고 했으니 돈이 필요 없습니다. 제 생활비는 남겨 놓았으니 부디...」
    「형님, 받으시지요. 그렇지 않으면 저희들이 불안합니다.」

    옆에서 신흥우도 거들었으므로 나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이것을 어찌할꼬. 내가 폐만 끼치누나.」
    다시 목이 메인 내가 혼잣소리처럼 말했을 때 기적이 울렸다. 열차가 출발한다는 신호였다.

    「형님, 꼭 전보를 쳐 주시오.」
    내 손을 움켜 쥔 신흥우의 목소리도 떨렸다.

    나는 이중혁과 신흥우의 어깨를 감싸안고 있다가 마침내 열차에 올랐다. 그것이 당당한 정도라면 그토록 가슴이 미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중혁과 신흥우는 내 처지를 알았기 때문에 처연한 심정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보라.
    황제의 밀사라지만 겨우 황제의 친필서한을 가슴에 품고 죄를 지은 사람처럼 밀행하고 있다.
    공식 사절이 아닌데다 경비도 지원받지 못해서 교인들이 걷어준 성금과 친지의 여비를 쪼개 받아서 교통비와 숙식비를 낸다. 그리고 과연 이 밀서를 미국 정부는 받아 보기나 할 것인가? 필리핀과 조선을 서로 맞바꾸기로 했다지 않은가?

    조선의 알렌 공사가 한 말도 마음에 걸린다.
    조선의 개혁도 일본에 맡기라고 했지 않은가? 황제와도 가까운 알렌이 그렇게까지 말한 것을 보면 이미 미국 정부의 방침이 결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 대륙을 횡단하여 워싱턴에 도착했을 때는 1904년 12월 31일이다.
    제물포항을 떠난 지 56일만에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도착했다. 나는 펜실베니아 에비뉴에 위치한 마운트 버논 호텔에 투숙했는데 수중의 여비는 2달러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평생을 통해 돈을 많이 가져본 적이 없고 욕심도 부리지 않았다. 그러나 워싱턴에 도착한 이 날처럼 돈이 떨어져서 불안해본 적이 없다. 아마 막중한 사명감이 압박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호텔에서 어렵게 한국 공사관에 연락을 했더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연말이어서 공사관 문을 닫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선교사 게일이 소개한 햄린 목사한테 전화를 하자 금방 연결이 되었다.

    「저, 조선에서 온 이승만이라고 합니다.」
    햄린에게 먼저 이렇게 말하고 덧붙였다.
    「제임스·S·게일(James·S·Gale)의 소개장을 갖고 왔습니다.」

    게일은 미북장로교 선교부 소속으로 황성 YMCA 창립위원이며 초대 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러자 햄린이 말했다.
    「음, 당신 이야기 들었소. 지금 어디요?」

    나는 소리죽여 숨을 뱉았다. 주여,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