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 황제의 밀사 ⑪ 

     사이베리아호가 호놀루루에 도착한 것은 1904년 11월 29일이다. 고베에서 12일이 걸린 것이다.

    배는 다음날 출항하도록 되어있어서 샌프란시스코행 승객들은 하선이 금지되었지만 나를 찾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민국 통역인 홍정섭이다.

    「하선증을 받았습니다. 내리시지요.」

    내 하선증 한 장이어서 이중혁은 남아야만 했다. 하와이의 감리교 선교부 감리사로 있는 와드먼(John.W.Wadman)과 윤병구(尹炳求)가 손을 썼을 것이다.

    과연 내렸을 때 둘이 활짝 웃음 띤 얼굴로 나를 맞았다.
    「형님, 어서 오십시오.」
    윤병구가 내 손을 잡으며 진심으로 기뻐한다.

    내 인사를 받은 와드먼이 말했다.
    「오늘 저녁에 에와(EWA) 농장에서 한인들이 모입니다.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모이는 것입니다.」
    「백명은 모일겁니다.」
    윤병구가 들뜬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한성사범을 졸업한 윤병구는 나보다 두 살 늦게 태어났는데 조선에 있을때부터 막역한 사이였다.
    윤병구는 기독교 목회자로 활동하다가 작년인 1903년 10월에 하와이로 이민을 왔고 올해 초(1904, 3월)에는 부인과 아들까지 하와이로 데려왔다.

    와드먼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시내를 향해 달리면서 나는 감회에 젖었다.

    1902년 12월 22일 121명으로 시작한 하와이 이민은 1904년 한해만 해도 33회에 걸쳐 3천여명이 이주해왔다. 현재 하와이 전역에 깔린 한인 이주 노동자는 4천명 가깝게 된다는 것이다.
    한낮의 태양이 비치는 대지는 풍요롭게 보였으며 행인들의 표정도 밝다.

    「작년에 신민회(新民會)를 결성했는데 호응이 큽니다.」
    옆에 앉은 윤병구가 말하는 바람에 나는 생각에서 깨어났다.

    신민회는 정치단체로 부패한 대한제국을 개혁시키고 일본의 억압을 물리치자는 것이 설립 목적이다. 윤병구 또한 대한제국의 부패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윤병구의 목소리에 열기가 띄워졌다.
    「밖에 나와보니 대한제국의 부패와 무능, 황제의 독선이 드러나 낯이 뜨거울 지경입니다.」
    「이보게. 난 황제의 밀사일세.」
    내가 불쑥 말했더니 놀란 윤병구가 시선만 주었다. 조선말에 익숙치 않은 와드먼도 핸들을 쥔 채 뒤를 보았다. 

    내가 가슴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웃었다.
    「여기에 황제의 밀서가 있네.」
    「어떤 내용입니까?」
    윤병구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그리고 누구한테 보내는 것입니까?」
    「루즈벨트 대통령.」
    그러자 와드먼이 앞쪽을 향한 채로 머리를 젓고 말한다.
    「루즈벨트는 직접 받아보지도 않을 거요.」

    이미 대한제국의 외교권은 한일협정서(1904,8)에 의거하여 일본이 파견한 고문의 감독을 받는 상황인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알고있습니다. 와드먼씨.」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주면서 내가 혼잣소리처럼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해 보는데까지 해 볼 것입니다. 그냥 물러날 수는 없어요.」
    「저도 돕겠습니다. 형님.」
    그러더니 윤병구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형님, 오선희라는 분 아십니까?」

    그 순간 숨을 멈춘 내가 눈만 크게 떴다. 어찌 잊겠는가?
    막중한 사명을 띤 처지여서 감히 꺼내지 못했던 이름이다.

    그때 윤병구가 말을 잇는다.
    「형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냈더니 여러 번 확인을 하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