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함 ‘이후’는 그 ‘이전’과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결론은 단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북(北)은 1950년대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는 자명한 사실과 진실을 재확인해야 한 다는 점이다.

     민주화와 진보 운운 하는 세상이 열리면서 “그간의 우리 대북정책은 케케묵은 냉전시대의 유물”이라는 ‘다른 시각’이 대두했다. 이 시각은 가면 갈수록 제법 그럴듯한 유행가로 정착했다. 이 유행가와 다른 노래를 부르면 불문곡직 ‘흘러간 옛 노래’에 집착하는 꼰데 취급을 받았다. “소련권이 붕괴한 지금 친북(親北)주의자가 어디 있다고 그러느냐?” 필자는 신문사 안에서도 그런 질문인지 빈정거림인지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20살 때였던 1950년대 말부터 이념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본 필자의 눈에는 민주화와 진보에 편승한 북노당 남노당의 준동이 너무나 확실한 실체로 보였다.
    “두고 보래두...” 두고 보았더니 김대중 노무현 시대에는 그들은 아예 권력구조 안으로까지 파고든 게 아닌가? 그런데도 “돈 주고 초코파이 주고 시장경제 맛 보여주면 북한주민은 물론 김정일까지도 변할 것”이라는 시각이 끈질기게 메뚜기 한 철을 구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정일이 과연 변했는가? 답은 필자가 굳이 하지 않겠다.
    천안함 ‘이후’는 그런 사실과 진실을 있는 그대로 인지(認知)하는 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 시대에 비하면 훨씬 개선된 대북정책을 써왔다고 인정하는 데 인색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천안함 폭침 직후만 해도 이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에 연연하지 않았다고 확언할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의 안보태세가 정말로 현실화의 방향으로 바뀌려면 이에 대한 대답부터 진솔하게 해야 한다. 

     국민 차원에서도 일부가 과연 “아, 김정일은 1950년대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구나” “우리가 돈으로 김정일의 북한을 변화 시킬 수 있다고 전제한 것은 잘못이었구나”라는 시각교정을 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아니, 오히려 “정부가 6.15 선언과 10.24 선언을 이행하지 않아서 이런 일을 자초했다”는 말 같지도 않은 말에 더 구미가 당긴다 할지도 모른다.

     김정일은 변하지도 않았고 변할 생각도 없다는 게 그들의 핵개발과 대남 전략과 천안함으로 입증되었다. 김대중 노무현 때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남쪽 정부와 종북 세력과 얼치기들이 자진해서 공양미 3백석을 갖다 바치니 굳이 판을 깰 이유가 없었다. 그걸 가지고 이쪽에선 “햇볕 덕택으로 북한이 변하고 있다“ 운운 하는 헛소리들을 하곤 했다.

     천안함 ‘이후’는 그런 헛소리를 더 이상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한결 사실과 진실에 다가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될까? 필자는 중우(衆愚)적 포퓰리즘 세태의 각성 가능성을 그렇게 높이 설정하지 않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