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계춘 신부.
    ▲ 김계춘 신부.

    세종시 논쟁이 시작되면서 4대강 문제가 좀 잦아드는가 싶더니, 최근 일부 천주교 성직자들이 느닷없 이 이 문제를 들고 일어났다.

    내 자신은 4대강에 대해 지지하거나 반대할 입장이 아니다. 그 계통의 전문가도 아니고 그 문제를 위해 전적으로 시간을 낼만큼 한가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직자들이 4대강 문제에 찬반을 주장하거나 집단행동을 보이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

    교회가 자연을 보호하고 하느님의 천지창조의 뜻을 따라야 함은 당연하지만 어디까지가 자연을 이용하는 것이고 어디서부터가 자연훼손인가 하는 것은 전문가와 실무진의 식견과 양심이 달린 문제다.

    이런 문제에 전문가도 아니고 몰두하여 연구한 사람도 아닌 천주교 성직자들이 무슨 주장을 하는 것은 뜻은 좋지만 선거를 앞둔 시점에 투표와 연계시켜 조직적으로 여론몰이 하면서 주장하는 것은 자칫 정치인들에게 이용할 당할 수 있다.

    이번 일은 일부 순박한 신부들이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먹여주는 재료에 의해 어떤 판단을 한 것으로, 그리고 그런 신부들의 말을 쉽게 믿은 다른 신부들이 동의하여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그 신부들이 얼마나 확신을 갖고 그렇게 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4대강 사업에 꼭 의견을 내야 한다면 모든 사제들이 사회학적 신학적 토론을 거쳐서 결정해야 한다.

    한국에 4천 명이 넘는 사제가 있고 1만 명이 넘는 수녀들이 있는데, 이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일부 성직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마치 대부분의 천주교 성직자와 수도자의 생각인양 내세우는 것은 천주교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일이다.

    천주교 신부들은 사랑과 정의감이 불타오르고 가족관계로 매인 곳이 없기 때문에 자타가 인정하는 양심의 보루로 여겨진다.
    그러나 한 가지 유의해야할 것은 사제의 양심이 만사의 진리이거나 모든 사람들이 수용해야 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천주교 사제는 남을 속이지는 않지만 속을 수는 있기 때문이다.

  • ▲ 명동성당. ⓒ 뉴데일리
    ▲ 명동성당. ⓒ 뉴데일리


    나는 아주 똑똑한 신부가 누구보다 쉽게 속아 넘어가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그만큼 천주교 사제는 '믿는 것'이 '주특기'인 사람들이다.
    자기의 지식과 상상을 초월하는 말을 들으면 설마 거짓말을 하겠느냐면서 그대로 믿어버리는 것이다. 내 자신도 동정심을 앞세우다가 많이 속아왔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천주교회라는 간판 때문에 신부의 말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때문에 신부들은 세속적인 일에 관한 자기 의견을 성경이나 교회의 권위를 이용하여 아전인수격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특히, 시국과 관계되는 중대한 문제라면 성직자 모두가 참여하는 공의회에서 찬반의견을 듣고 통일된 주장을 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늘려서 모두의 생각인양 내세우는 것은 공산당들이 쓰는 상투적인 방법이다.

    천주교 사제는 사제로 헌신하고 있는 한 모두가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사제이다.
    특정 단체에 속한 사제만이 정의사회 구현에 애쓰고 나머지는 정의감과는 거리가 먼 썩은 사제들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천주교 사제는 본질적으로 진리 자체이신 그리스도의 일을 대신 하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바치고 황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쳐라" 라고 하셨듯이 사제는 세속적 권력과 세속적 논리에 근거하여 사목하는 것이 아니다.

    사제란 그리스도의 참 정신, 즉 정의를 넘는 사랑을 토대로 진솔한 기도와 은총으로 세속에서 사랑의 기적을 이룩하고 평화를 심어야 하는 신분이다.

    당연히, 천주교 사제는 만능도 아니며 UN경찰도 아니다.
    세속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사제 못지않은 지식과 양심을 가진 인재들도 많다.
    사제들 못지않은 진정한 애국자나 양심가들도 허다하다. 넓게 보면 인류는 각자 고유한 인격을 지닌 개인들로 구성되며, 인류 전체는 하느님의 계획대로 최고 최종의 진선미로 나아가고 있다.

    요컨대, 나는 사제들이 정치적으로 시기를 맞춘 듯한 일에 너무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천주교회는 교회의 권위인 ‘무류지권(infallibility = 無謬之權 = 절대 그르침이 없이 신앙과 윤리에 관하여 전하는 권한)’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