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득히 머나먼 길을 따라 뒤돌아 보며는 외로운 길
    비를 맞으며 험한 길 헤쳐서 지금 나 여기 있네.
    끝없이 기나긴 길을 따라 꿈 찾아 걸어온 지난세월
    괴로운 일도 슬픔의 눈물도 가슴에 묻어놓고
    나와 함께 걸어가는 노래만이 나의 생명
    언제까지나 나의 노래 사랑하는 당신 있음에
    언제까지 나의 노래 아껴주는 당신 있음에
    아득히 머나먼 길을 따라 뒤돌아 보며는 외로운 길
    비를 맞으며 험한 길 헤쳐서 지금 나 여기 있네.

  • ▲ 이미자씨와 함께 한 생전의 박춘석씨. ⓒ 연합뉴스
    ▲ 이미자씨와 함께 한 생전의 박춘석씨. ⓒ 연합뉴스

    노랫말처럼 아득히 머나먼 길, 뒤돌아보면 외로운 길을 마감하고 그가 떠났다.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전쟁과 개발연대, 민주화의 시기를 거치며 그는 노래로 지치고 힘든 대중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줬다.
    ‘비나리는 호남선’ ‘섬마을 선생님’ ‘초우’ ‘삼팔선의 봄’ ‘사랑의 맹세’ ‘바닷가에서’ 등의 그의 노래들은 고난의 시절 한국인들의 가슴을 적신 ‘명곡’들이었다.
    뇌졸중과 16년간 싸워온 원로작곡가 박춘석씨가 14일 오전 6시 자택에서 끝내 세상과 떠났다. 향년 80세. 앞서의 이미자씨에게 준 ‘노래는 나의 인생’의 노랫말처럼 ‘아득히 머나먼 길, 뒤돌아보면 외로운 길’을 마감했다.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노래는 나의 인생’은 지난 1990년 이미자씨의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준 곡이다.

    1930년 5월 8일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네 살 때부터 풍금을 치기 시작해 ‘신동’ 소리를 들었다. 봉래소학교-경기중학교를 거치며 피아노와 아코디언을 독학한 그는 경기중 4학년(지금의 고교 1년) 때 길옥윤, 베니 김 등의 제의로 명동 ‘황금클럽’ 무대에 서면서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작곡 1호는 1954년 발표한 ‘황혼의 엘레지’였다.

    작곡가로 대성한 그는 1964년 이미자씨와 만나면서 전성시대를 열었다. 그는 이미자에게 ‘기러기아빠’ ‘흑산도 아가씨’ 등 주옥같은 500여 곡을 작곡해주며 환상의 콤비를 이뤘고 이미자씨에게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안겨줬다.

    “음악과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을 고집한 그는 1960~1970년대에는 패티김 남진 나훈아 문주란 정훈희 등 ‘박춘석 사단’을 지휘하며 인기를 모았다. 패티 김씨는 1962년 고인의 곡 ‘초우’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그는 국내 대중가요 개인 최다인 2700여 곡을 작곡했고, 2001년에는 영국 그로브음악대사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1994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고인은 거동은 물론 언어장애로 의사표현도 하지 못하며 어려운 투병생활을 해왔다.
    한편 빈소가 차려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에는 고인의 곡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은 서둘러 조화를 보내왔다. 패티 김·남진·문주란·하춘화·송대관씨 등이 조화를 먼저 보내 서글픈 마음을 나타냈다. ‘괴소문’ 이후 활동이 없는 나훈아씨도 조화를 보내왔다. 문주란·남진·최희준·패티 김씨 등이 직접 빈소를 찾아왔다.
    패티 김씨는  “너무 오랫동안 고생하신 분이라 가슴이 아프다”라며 울먹였다. 그는 지난해 가을 병상에서 고인과 마지막으로 만났다고 한다. “손을 꼭 붙들고 노래를 불러드리면 눈물을 흘리곤 하셨다”고 회고했다.  남진씨도 “박 선생님은 오늘날 제가 있기까지 지도해 주신 분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자상하고 인간적인 분”이라고 기억했다.

    고인의 장례는 한국가요작가협회장(5일장)으로 18일 치러진다. 공동장례위원장은 가수 남진, 한국가요작가협회 김병환 회장,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신상호 회장. 장지는 경기도 성남 모란공원묘원.

    <박춘석씨 약력>
    1930년 서울 출생
    1947년 경기고 졸
    1949년 서울대 음대 기악과 중퇴
    1954년 신흥대(현 경희대) 영문과 졸
    1954년 KBS경음악 단장
    1955~64년 오아시스레코드사 전속 작곡가
    1965~75년 지구레코드사 전속 작곡가
    1987년 음악저작권 협의회 회장
    1989년 거성레코드사 회장
    1990년 세계법보사 회장
    1992년 가칭 통일국민당 창당 발기인
    2010년 3월 14일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