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정(法頂) 스님이 입적(入寂)하셨다.
    처음 뵙기로는 70년대 민주화 운동시기에서였다. 젊게 보이셨다.
    민주화 원로그룹이 모이시면 불교계 인사로 법정 스님이 어김없이 참석하시는 모습을 먼발치서 바라보곤 했다. 
     존경의 마음으로 바라 뵈었다. 그러나 단순히 스님께서 민주화 대열에 계셨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민주화 이후에 와서 스님께서는 민주화-진보 나름의 지나침에 대해서도 따끔한 일침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게 더 존경스러웠다.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바로 그런 분이셨다.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 님, 불교의 법정 스님, 이 두 분이 계셔서 한국 종교계가 레바논을 면할 수 있었다. 

     진짜는 진짜끼리 통한다.
    간혹 있는 종교분쟁은 가짜와 가짜의 지옥 1등석 다툼일 뿐이다.
    하느님 곁에 가신 김수환 추기경 님, 연화대에 오르신 법정 스님, 두 분 오랜만에 만나셔서 이승에 계셨을 때처럼 세미나 한 판 화끈하게 벌여 주시지요.
    주제는 <축생(畜生)으로 전락하는 인간계를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입니다. 사회자로는 소생이 앉으면 안 되겠습니까? 
     스님과 추기경 님 두 분은 이른바 좌우 대립을 한 차원 높이시어 그것을 고급 영혼과 저급영혼 사이의 대립으로 바꾸셨다. 우주적 파라다임(cosmic paradigm)의 차원이동이었다. 두 분은 또한 인간만이 사는 곳 아닌, 온 생명들이 함께 살아야 하는 일체중생(一體衆生)의 지구공동체라는 개념을 정립 하셨다.

     민주화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나는 천주교의 박홍 신부님을 법정 스님이 계시던 송광사로 안내해 두 분의 대담을 주선하고 사회한 적이 있다 두 분의 대담은 이튿날 조선일보에 대대적으로 보도 되었다. 총칼과 분신자살이 맞붙던 그 시절 법정 스님과 박홍 신부님의 대담은 “어허, 밖이 왜 이리 험한고, 그만들 해라” 하는, 학(鶴)의 일성(一聲) 그것이었다. 

     무소유(無所有)의 법정 스님-‘삼사라(samsara)'의 온갖 인연에 매이지 않으시려던 법정 스님, 스님의 법어(法語)에서 나는 곧잘, 골고다 언덕의 처형장으로 무소유로 올라가시던 "설흔 한 살 청년 예수님의 제자 법정" 스님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부처님 예수님, 두 분 다 결국은 같은 말씀 아니겠는가? 
     그러나 “예수님 부처님 두 분 다 결국은 같은 말씀 아니겠는가?”에 이르기까지는 BC 624(부처님 탄신)~AD 원년(예수님 탄신)~AD 30(예수님 공생활)~2000년대라는 긴 세월이 흘러야 했다. 

     스님의 이승의 생애(生涯)는 한 마디로, 한반도에 부처님 문명, 예수님 문명, 인간의 인간다운 문명의 ‘무엇?’과 ‘어떻게?’를 가르쳐 주신 외계인이셨다. 
     스님, 또  오시려 하십니까? 부디 다시 오셔야 할 과보(果報)일랑 깨끗이 털어 버리신 왕생극락 복학생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