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격랑속으로 ⑫

     「이게 무슨 조정이란 말입니까?」
    내가 따지듯이 묻자 노인이 빙그레 웃는다.

    나는 지금 춘생문 사건에서 실패하자 그 주모자를 처벌한 임금을 성토하는 중이다.
    임금은 주모자인 임최수 등을 처형했는데 친일파 각료들과 일본의 압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모자들과 은밀히 계획을 짜고 춘생문을 통해 빠져나가려고 했던 임금인 것이다.

    그것이 실패하자 자신의 동지들을 처단할 수밖에 없었던 임금에게 나는 전혀 동정심이 일어나지 않았다. 임금은 동지이며 애국자들을 처형하고 유배를 보낸 것이다.
    친일 김홍집 내각과 일본이 아무리 압력을 넣었다고 해도 그렇다.

    내가 말을 잇는다.
    「임금이 이씨 왕권에만 집착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임금은 조선 백성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이러다가 곧 조선 땅은 일본이나 러시아의 먹이가 될 것입니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이공, 그렇다면 그대는 임금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가?」
    내 시선과 마주친 노인이 잔잔하게 웃었다.

    「임금은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하셨지 않을까?
    그대로 덮어둔다면 일본은 더 압박을 해올 것이고 내각은 총사퇴를 할 수도 있지 않겠소?
    그렇다면 더 큰 혼란이 올 것이오.」

    그 말도 맞다.
    그러나 어찌하랴.
    서로 맞는 말만 지껄이는 동안에 몸은 썩어간다.

    그때 노인이 말했다.
    「일본도 메이지유신을 시작하기 전에 막부를 상대로 전쟁을 치뤘소.
    내란(內亂)이나 같았지. 그 내란을 겨우 수습하고 유신이 시작된 것이오.
    이쯤 혼란은 아무것도 아니었지.」
    그리고는 길게 숨을 뱉는다.

    「조선은 너무 늦은감이 있소.」

    「임금을 그대로 두고 개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불쑥 내가 물었더니 노인은 머리를 돌려 부처님을 보았다.
    우리 둘은 법당에 앉아있는 것이다.
    「조선 백성에게는 아직도 임금이 가슴속에 깊게 박혀져 있다오.」
    노인이 부처님을 향해 혼잣소리처럼 말을 잇는다.

    「참으로 어진 백성들이요. 저잣거리에 나가 지나는 백성을 잡고 물어보시오.
    굶고, 시달리고, 병들어 죽어가는 백성들이 임금 원망을 합디까?」
    나에게로 시선을 돌린 노인이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이제는 자력(自力)으로 왕조를 바꾸기는 이미 늦었소. 그러니...」

    「이씨 왕조를 지키면서 개화 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도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노인이 말을 받는다.
    「대세(大勢)를 따르시오. 그러나 순리(順理)를 벗어나지는 마시오.」
    한마디씩 천천히 말한 노인이 나를 향해 다시 웃는다.

    「임금은 조선의 지주(支柱)로 지켜드리도록 하시오.
    임금은 백성과 동일체로 박혀있어서 임금을 버리면 백성들의 마음도 떠나게 되어있소.」

    나는 시선을 들어 부처님을 보았다.

    저녁무렵이 되어있었는지 옆쪽 움막에서 밥 짓는 냄새가 풍겨왔다.
    늙은 보살이 오신 모양이다.
    한동안 부처님을 보고 앉아 있었더니 마음이 가라앉고 몸도 나른해졌다.

    그것이 또 내 가슴에 깊게 박혀졌다.
    그 후부터 임금이 아무리 못마땅했어도 결정적인 거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다.
    임금은 그 후부터 오래도록 내 가슴에 박혀있었다.
    나도 조선 백성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