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저편에 그가 있다. 지금 기온 영하 14도. 바람은 귀를 찢을 듯 세차지만 눈은 내리지 않는다. 뉴욕타임즈는 ‘행진했다’고 표현했다. ‘Marches Into North Korea’라고.

    저 강을 그처럼 행진하고 싶다. 북으로, 북으로. 중국으로 출국 전 보름동안 그는 곡기를 끊었다.

    “선생님,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먹을 수 없어요.” 걱정하는 그를 안심시키듯 덧붙였다. “전 괜찮아요. 동포들과 함께 한다는 생각에 너무 행복해요.” 그런 그를 인천공항에 배웅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강 저편에 그가 있다. 군사분계선까지 7㎞라고 했던가. 한 걸음에 달려갈 것 같은. 빤히 보이는 북녘의 산을 보며 자꾸만 되뇌인다. “이겨야 해, 견뎌야해.”

  • ▲ 조성래 팍스코리아나 대표 ⓒ 뉴데일리
    ▲ 조성래 팍스코리아나 대표 ⓒ 뉴데일리

    지난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오후. 조성래 팍스코리아나 대표는 잠시도 가만히 서있기 힘든 추위 속에서 임진각을 찾았다. 탈북자종합회관 김우진 목사와  김세준 팀앤팀 이사, 그리고 뜻을 같이 한 신도들이었다.

    “로버트 박이 입북 전 꼭 오늘 이 자리에서 기도를 가져달라고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기도의 주제는 로버트 박의 안녕과 무사귀환이 아니었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알면서도 외면하는 한국 교회와 일부 정치인들을 위한 기도였다.

    “로버트 박은 교회가 북한의 인권문제를 외면하는 것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엄청난 실망감도 느꼈고요.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400만 명이 굶어죽고 700만 명이 굶주리는 지옥 같은 처참한 현실을 외면할 수 있느냐는 것이 로버트 박이 늘 의아해했고 괴로워했던 문제였습니다.”

    눈 덮인 소공원에 엉성한 돗자리를 깔고 이들은 5시간이 넘도록 기도를 했다. 한국 교회의 회개를 위해, 또 정치인들의 각성을 위해.  

    조 대표는 탈북자 이순옥씨가 파리의 ‘메종 드 라디오 프랑스’에서 북 수용소에 대해 한 증언을 들려줬다. ‘어느 날 오후, 공장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공장 안이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작업장 한 가운데 수백 명의 죄수 아닌 죄수를 모아놓고 담당 교도관들 두 명이 눈에 핏발을 세우고 미친 듯 고함을 치며 날뛰고 있었다. 교도관들은 수령님을 믿지 않고 하늘을 믿는 미친 정신병자 놈들이라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그 사람들을 차고, 때리고 하면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고 있었다.  교도관들은 "너희들 가운데서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대열 앞에 나서라. 하늘을 믿지 않고 수령님을 믿겠다고 하면 자유세상으로 보내서 잘 살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사람들을 윽박지르며 하늘을 거부하라고 채찍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했다.

    그런데 너무나도 이상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은 왜 그런지 아무 대답도 없이 그렇게 매를 맞으면서도 침묵으로 맞섰다. 무서움과 공포 속에서 떨고 있는데 예수를 믿는 그 사람들은 계속해서 침묵으로 대응했다. 그 때 독이 오른 교도관이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닥치는 대로 아무나 여덟명을 끌어 내다가 땅바닥에 엎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구둣발로 내리밟고 짓이겼다.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고 허리며 팔 다리 뼈가 부러졌다.

    그 사람들은 고통 중에서도 몸을 뒤틀면서, 짓밟힐 때마다 신음소리를 냈는데 그 신음소리가 너무나도 이상하게 들렸다. 뒤에 알고 보니 그 사람들이 고통 중에서도 몸을 뒤틀면서, 짓밟힐 때마다, 뼈가 부러지고 머리통이 부서지면서 신음소리처럼 애타게 불렀던 것은 바로 ‘주님의 이름’이었다.

    미쳐 날뛰던 교도관들은 “수령님과 당을 믿는 우리가 사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 너희가 사는가 보자”하면서 달려가 펄펄 끓는 쇳물통을 끌어왔습니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그 신자들 위에 부었다. 그 사람들은 순식간에 살이 녹고 뼈가 타면서 숯덩이가 되어 버렸다. 난생 처음으로 내 눈앞에서 사람이 숯덩이로 변해가는 것을 보았다.’

    “로버트 박이 북한으로 가며 북한 수용소의 해체를 요구한 것은 이같은 북한의 참혹한 현실을 탈북자들에게 자주 들은 이유입니다.” 조 대표는 “북한 동포들의 핍박을 우리는 그저 흘려들을 뿐, 따스한 교회 안에서 애써 외면하려 했다”고 고개를 떨궜다.

    물론 아주 메아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기독교인들이 매주 목요일 오후 로버트 박을 위한 기도회를 준비했다. 12월 31일 첫모임을 서울 방배동 ‘한사랑비전교회’에서 가졌고 오는 7일엔 서울 신촌 아름다운교회에서 기도회를 갖는다. 작으나마 로버트 박이 떨군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더 큰 울림으로 키워나갈 겁니다.” 조 대표는 순교를 각오한 로버트 박의 결행이 커다란 통일의 불씨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2010년 그는 북한에 희망의 빛이 내려앉아 멀리 멀리까지 퍼져나가기를 희망한다.

    “우선 로버트 박의 입북을 모를 많은 북한인들을 위해 희망의 풍선을 띄울 겁니다.” 조 대표는 로버트 박이 기도를 부탁했던 바로 이 임진각에서 북한 동포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풍선’들을 날릴 것이라고 했다. 풍선에 담길 전단엔 로버트 박이 입북하게 된 배경이며 그의 결심과 요구, 그리고 김정일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들이 담기게 된다. 그리고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전 세계 동시집회 역시 꾸준하게 펼쳐나갈 계획이다.

    그는 기도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겨우 10명 내외의 작은 기도지만 이 간절함이 모든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우리의 목소리가 더 커져서 북한에 있는 로버트 박에게도 들릴 때까지 끝없이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할 겁니다. 풍선도 그침 없이 북녘으로 띄울 것이고요.”

    이런 그도 로버트 박의 얘기를 할 때는 눈가에 안개가 서렸다. “북한에 가서도 아무 것도 안 먹겠다고 했는데 정말 그럴 겁니다. 몸이 어떻게 지탱하는지….”

    다시 눈밭에 그를 주저앉히고 돌아오는데 가슴이 먹먹해왔다. 고개 들어보니 북녘 땅이 보였다. 꽁꽁 얼어붙은 동토. 저 하늘에 곧 희망의 풍선이 날아가 사뿐히 내려앉을 것이다. 빛처럼 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