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 전문기자
    ▲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 전문기자

    이른바 문민정부 첫해였던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예상을 뒤엎고 국방차관에 정통 재무관료 출신인 이수휴씨를 임명했다. 국방차관은 종전에는 주로 예비역 소장 등 군 출신이 임명되던 자리였다. 이 차관이 93년 말 조달본부 포탄사기 사건에 의한 군 수뇌부 사퇴에 따라 물러나자 김 대통령은 다시 민간인 국방대학교 교수를 차관으로 임명했다.

    그 뒤 노무현 대통령은 역시 경제부처 출신인 김영룡씨를 국방예산을 총괄하는 기획관리실장으로 보냈다가 차관으로 발탁했다. 국방차관의 비(非)군 출신 발탁은 이명박 정부에도 이어져 올 들어 경제관료 출신인 장수만 차관이 임명됐다.

    왜 역대 대통령들은 이처럼 이른바 문민 국방 장·차관에 강한 집착을 가져온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우리 군이 엄청난 국방비를 쓰고 있으나 비리나 비효율적인 부분이 적지 않아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금년도 국방예산은 28조5326억원으로 정부 재정의 15%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엔 김영삼 정부 이후 종종 터져 나온 무기도입 또는 군수조달 관련 비리 사건 등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또 세종대왕함과 같은 이지스함이 한 척당 1조원, 공군 최신예 F-15 전투기가 한 대에 1000억원, 세계정상급 차기 전차 XK-2 '흑표'가 한 대에 80여억원씩이나 하니, 이렇게 엄청나게 비싼 무기를 몇 대만 덜 사도 사회복지나 교육 사업에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현 정부 권력 핵심부에선 무기도입 리베이트가 20%에 달해 이것만 개선해도 상당한 국방비 절감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실제 무기도입 커미션은 대형사업이 계약액의 1% 미만, 중소 규모 사업이 1~5%가 관행이기 때문에 이런 인식은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다. 하지만 무기도입에 대한 강한 불신과 선입견 때문에 우리 사회 일각에선 이를 그럴듯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최근 이상희 국방장관의 국방예산 삭감반대 서한 파문으로 국방 장·차관 간의 갈등이 노출되고 현 정부의 안보관(觀)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급기야 국무총리가 지난 27일 국방장관을 불러 "장관 서한으로 정부가 마치 안보를 소홀히 하는 것처럼 비치게 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사였다"고 질책까지 했다.

    하지만 제2롯데월드 허용 등 그동안 현 정부가 보인 행태 때문에 현 정부가 오히려 과거 정부에 비해 안보를 경시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군 안팎에서 비교적 설득력 있게 퍼져 나가고 있다. 이 장관도 기획재정부장관 등에게 보낸 서한에서 '흔히들 진보·좌파 정부라 불리는 지난 정부에서도 평균 8.9%의 국방비 증가를 보장한 바 있는데 자칫 과거 정부에 비해 현 정부가 국방을 등한시한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언급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안보를 경시(輕視)하는 것과 국방비의 효율적 편성 및 집행을 추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점이다. 국방비 절감 등 국방개혁이 안보 경시로 무조건 매도돼선 안 될 것이다. 이 대통령의 생각처럼 지금도 군에는 국방비나 조직 운용에 있어 개선할 여지가 많은 게 사실이다. 값싼 상용(商用) 제품을 써도 되는데도 튼튼하고 비싼 군 전용 제품을 고집하거나, 육·해·공 3군 간 갈등 때문에 통폐합되지 않고 있는 일부 유사 중복 기관들이 그런 예다. 부디 정부와 군이 이번 사태에 지혜롭게 대처해 통수권자와 군 사이에 신뢰가 회복되고 굳어지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