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몰래 가야할 상하이...중국인 변장

    *1919년 3.1운동 한달 뒤인 4월23일 서울에서 선포된 한성(漢城)임시정부는 이승만을 정부수반인 ‘집정관총재’로 선출했다. 이때부터 이승만은 워싱턴에서 ‘대한공화국’(Republic of Korea)라는 국호를 정해 처음 쓰기 시작했다. 직함은 President로 번역하여 썼다.
    이보다 열흘 전에 출범한 상해임시정부에선 대통령-부통령이 없는 국무총리로 지명되어 있었다. 러시아 임시정부와 함께 3분된 조직을 통합하려는 운동이 벌어져 같은 해 9월에 상해에서 통합 임시정부가 세워지게 되었고 대통령엔 이승만이 추대되었다. 김구는 경호를 맡는 경무국장이 되었다.
    “대통령이 부임해야한다”는 상해 임정의 요청에 이승만은 비서 임병직과 함께 중국에 가기로 했다. 일본이 30만달러 현상금을 걸어놓았기 때문에 행선지를 숨기려고 우선 하와이로 떠났다. 당시 중국으로 가는 배는 거의 일본을 거쳤으므로 중국직행 배를 기다려야했다.

  • ▲ 일본 감시를 피해 중국인으로 변장한 이승만, 상하이 임정 대통령 취임을 위해 중국행. ⓒ 뉴데일리
    ▲ 일본 감시를 피해 중국인으로 변장한 이승만, 상하이 임정 대통령 취임을 위해 중국행. ⓒ 뉴데일리


    중국직행 선박...숨은 곳은 시체 창고 관속이었다

    하와이엔 장의사를 운영하는 미국인 친구 보스윅이 있었다. 그의 주선으로 1920년 11월15일 중국직행 선박에 탈 수가 있었다. 보스윅은 선장과 두 사람의 밀항을 합의해 두었다.
    어두어지기를 기다려 중국인 복장을 입고 변장한 이승만과 임병직 두 사람은 배표도 없이 몰래 배에 숨어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간 곳은 갑판아래 창고였다. 창고안에는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것은 중국인 노무자들의 시체가 담긴 관들을 가득 실은 배였다. 발각되면 안되기에 관사이에 몸을 숨기고 악취와 밤새도록 싸우며 잠을 청했다.
    두 사람은 다음날 밤중에 2등 항해사 앞에 나섰다. 항해사는 가난한 아버지와 아들이 밀항하려고 몰래 탄 것으로 여기고 선장에게 끌고 갔다. 선장은 아무것도 모르는 체 야단을 친 다음, 몸으로 갚으라며 노동을 명령했다. 젊은 임병직에겐 청소를 맡기고 이승만은 망보는 일을 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