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거리가 위험한데, 다 큰 처녀가 '야밤'에 어딜 나간다는 말이냐?"
    "결혼 택일을 하려고 유명한 단골 점쟁이를 찾아갔는데 '야밤도주'를 했더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잘못된 언어 습관 가운데 같은 뜻을 지닌 우리말과 한자말을 겹쳐서 사용하는 예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 고유 글자를 갖지 못하고 중국 글자인 한자를 빌려 써 온 영향일 것입니다. 이렇듯 말 따로 글자 따로 이다보니 자연스럽게 '한자말+우리말' '우리말+한자말' '한자말+한자말'의 의미 중첩어, 즉 겹말들이 생겨난 것이지요.

    위 예문에서의 '야밤' '야밤도주'도 이런 현상으로 빚어진 오류입니다. 흔히 '깊은 밤' '한밤'을 뜻하는 말을 '야밤'이라고 잘못 표현한 것이지요. '야밤(夜밤)'의 '야(夜)'와 '밤'은 같은 뜻이므로 '한밤'이나 그냥 '밤'으로 부르고 써야합니다. 마찬가지로 '야밤도주(夜밤逃走)'는 '한밤에 도망하는 것'을 이르는 한자 성어이므로 '야반도주'(夜半逃走)라고 해야 제격입니다. 우리말 '밤중' '한밤'에 상응하는 한자말은 바로 ‘밤의 반(半)'이란 뜻을 지닌 '야반(夜半)'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지요.

    위의 예문들은 "밤거리가 위험한데, 다 큰 처녀가 '한밤(깊은 밤)'에 어딜 나간다는 말이냐?" "결혼 택일을 하려고 유명한 단골 점쟁이를 찾아갔는데, '야반도주(夜半逃走)'를 했더랍니다."로 말함이 맞습니다.

    '야밤도주'와 비슷한 예로는 백주대낮 → 대낮·백주, 약수물 → 약수, 역전앞 → 역전·역앞, 처갓집 → 처가, 상갓집 → 초상집·상가, 면도칼 → 면도, 가사일 → 가사, 주일날 → 주일, 당일날 → 당일, 생일날 → 생일, 탄신일 → 탄신, 새신랑 → 신랑, 고목나무 → 고목, 과수나무 → 과일나무, 우방국 → 우방, 지프차 → 지프, 손녀딸 → 손녀, 노잣돈 → 노자, 동해바다 → 동해, 백발머리 → 백발·흰머리, 진앙지 → 진앙, 실내체육관 → 체육관, 비명소리 → 비명, 함성소리 → 함성…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조금만 신경 쓰면 고쳐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용어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