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뉴데일리
    ▲ ⓒ 뉴데일리

    경향신문의 '소통' 시리즈가 화제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 사회에서 왜 소통이 잘 안 되느냐 하는 대목이 특히 관심을 끈다. 실은 필자에게도 질문서가 왔길래 답신을 해준 바 있다. 

    필자는 우리 사회의 소통 부재의 가장 큰 이유로 "김정일을 '진보'라고 보는 일부의 시각'을 들었다. 다른 이유와 다른 쪽 탓도 물론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로 그것을 꼽은 것이다. 

    소통을 불능하게 만드는 것은 한 마디로 획일주의, 전체주의, 광신주의, 절대주의, 독재적 사고방식, 집단주의, 그리고 조직이익 우선주의 같은 것들이다. 획일주의는 다양성을 압살한다. 전체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 광신주의는 사람을 미쳐 날뛰게 만들고 상대방을 신성모독으로 단죄한다. 절대주의는 1인, 1정파, 1개의 가치관만을 신격화시키고 그 밖의 사람, 그 밖의 정파, 그 밖의 가치관을 용납하지 않는다. 

    독재적 사고방식도 마찬가지다. 집단주의는 집단의 恨을 풀고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갖은 억지와 궤변도 불사하면서, 자기집단에 불리한 것이면 상대방의 논리가 아무리 일리 있어도 막무가내로 수긍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소통불능이다. 조직우선주의도, 예컨대 자기 쪽이 아무리 잘못했어도 조직의 이익에 이롭지 못하다고 판단될 경우엔 극구 변명하고 감싸고 돈다. 민노총 멤버가 성추행을 했을 때 민노총 지도부가 그랬다. 

    이밖의 이유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필자는 평생을 통해 이상의 이유로 인한 소통불능의 체험을 두 번 했다. 1961년~1987년의 권위주의 시대에 필자는,. 비록 산업화라는 당위적인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 있었던 절대 권력의 과잉, 남용, 일탈, 지나침이 빚는 소통불능의 부작용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특히 유신시대에 그런 체험을 강하게 했다.

    그러다가 1987년의 민주화가 왔다. 민주화는 그런 지난 시대의 소통불능의 원인을 다시 만들지 않는 시대일 것이라고 필자는 당연히 기대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았다. 이번에는 민주화 시대 나름의 획일주의, 전체주의, 광신주의, 절대주의, 집단주의, 조직우선주의가 판을 치기 시작해했다. 대중적 포퓰리즘, 낙인 찍기, 집단광기, 홍위병 현상, 주사파적 전체주의, 무정부적 暴擧, 심리적 린치, 협박, 겁주기, 인민재판적 분위기, 숙청적 분위기, 테러적 분위기, 선동주의, 광장의 휘몰이, 유사종교적 광분...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래서 필자는 평생 두 번에 걸쳐, 대항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두 개의 소통불능의 원인을 접한 바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 대항의 과정에서 필자 자신도 미처 의식하지 못한 내 나름의 지나침, 오류, 불찰, 과실, 미숙함을 법했을 가능성을, 언제든지 인정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지금 현 시점에서 소통불능의 가장 큰 원인이 극좌 전체주의인 종북세력 쪽에서 온다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 지난 시대 권위주의적 절대권력의 가능성은, 필자는 이제 거의 걱정하지 않는다. 그 대신, 김정일적 절대주의와 광신주의, 그리고 그것을 무슨 이유에서건 감싸고 돌면서 '대한민국적인 가치'라면 일괄해서 모조리 적대하는 일부의 극열주의가 소통불능의 가장 큰 이유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필자 개인의 생각이다.

    '대한민국적인 가치관'-그것은 곧 대한민국의 제헌정신, 헌법정신을 말한다. 그리고 그 핵심은 자유 민주 공화 법치 인권, 개인의 중요성을 체제화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애정과 존중(loyalty)이다. 이 가치만 모든 정파들이 함께 투철하게 공유하면 소통이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합헌 합법적 보수주의, 합헌 합법적 자유주의, 합헌 합법적 진보주의 사이는 소통불능의 敵의 관계가 아니라, 소통가능한 경쟁자의 관계일 뿐이다. 이 테두리를 벗어나니까 소통불능이 되는 것이다. 절대주의, 광신주의, 공갈협박, 집단우선주의, "내가 곧 정의 진리, 행동하는 양심의 화신이고 다른 것들은 惡이다"라고 자처하는 것 때문에 소통이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