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를 묻고 온 다음날, 아들은 편지를 썼다.
    땅 속 아닌 가슴에 묻은 어머니에게.
    긴 편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
    여행을 떠나시던 수요일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어요.
    어머니, 금요일 저녁 여섯 시에 돌아오겠다고 하셨잖아요.
    왜 안 오시는 거예요.
    이번만큼은 어머니생일 정말 챙겨드리고 싶어서
    오실 때 제대로 해 드리려고 했는데,
    이젠 7월 6일이 아닌
    7월11일에 어머니를 왜 떠올려야 하는 거예요? 왜…왜….

    ‘故 박왕자’라니요.
    왜 어머니 성함 앞에 글자가 있는 거예요? 왜... 왜..
    아프다고 토하시는 고통 하나도 없이.
    진료실도, 병실도, 응급실도, 중환자실을 거칠 이유도 없이.
    왜 장례식장으로 가야하는 거예요.
    아파 죽겠다는 말 한마디라도 해보세요, 제발.
    <중략>
    아들 군대 입대할 때 그렇게 우시고 걱정하시던 어머니,
    저도 맞지 않고 다 피해낸
    차디찬 총탄에 가버리신 어머니.
    부디 다음 세상에서는 아들 말고 다른 것에도 눈을 돌리세요.
    지금까지도 과분히, 넘치도록 아들만 바라보셨으니.
    어머니 정말 사랑합니다. 나의 어머니, 사랑합니다.

  • ▲ 고 박왕자씨. ⓒ 뉴데일리
    ▲ 고 박왕자씨. ⓒ 뉴데일리

    한 고귀한 생명이 바로 1년 전 오늘, 북한군의 초병이 쏜 두 발의 총탄에 스러졌다.
    그리고 지난해 7월15일 동두천 탑동동 공원묘지 예래원에 넋을 눕혔다.
    금강산에서 북한군에 피격당해 목숨을 잃은 고 박왕자 씨의 예래원 묘소는 1주기를 맞았어도 너무 썰렁했다.
    마치 잊혀지고 있는 죽음이란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난 1년, 모두 바쁘게 살아서일까? 관광길에 나섰다가 총을 맞아 숨진 엄청난 사건은 이제 국민들의 ‘메모리 용량’을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유사한 개성공단 유 모씨 억류문제가 아직 풀리지 않고 있고, 무엇보다 박씨의 죽음에 대한 어떤 진상도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은 속에서도 국민들의 기억력은 그 한계를 늘이지 못하는 것 같다.

    짧게나마 기억을 되살려보자.
    1년 전 오늘 금강산 관광지구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당시 53세의 남한 관광객 박왕자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등과 엉덩이에 북한군 초병이 쏜 총탄 두 발을 맞았다.
    무장하지 않은 관광객을 조준 사격했다.

    소중한 인명을 빼앗아갔음에도 북한의 태도는 적반하장이었다.
    현장 조사와 재발 방지책 마련이라는 남측 요구를 거부하고 박씨가 군사통제지역으로 넘어간 것이 원인인 만큼 남측이 책임을 져야 하고 사과하라고 맞섰다.
    박씨 1주기를 하루 앞둔 7월10일 통일부 대변인은 사건 해결을 위한 당국 간 협의에 응할 것을 북측에 촉구했다. 북측은 요지부동이다. 우뚝 선 장벽처럼 말이 없다.

  • ▲ 고 박왕자씨의 외아들 방재정씨. ⓒ 뉴데일리
    ▲ 고 박왕자씨의 외아들 방재정씨. ⓒ 뉴데일리

    고 박왕자씨의 가족들 역시 장벽 앞에서 마냥 무력한 모습으로 지난 1년을 보냈다.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던 아들 방재정(24)씨는 제대를 하고 복학을 했다. 하지만 억울하게 잃은 어머니에 대한 슬픔에 마음 다잡으려 해도 책이 쉽게 손에 잡히질 않는다.
    “성격이 조심스러운 분이셨는데 북한 군사시설의 펜스를 함부로 넘거나 우회할 분이 결코 아니다.”라고 어머니의 북한 군사지역 침범 가능성을 부인하는 방재정씨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상이 꼭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내를 잃은 남편의 심경 역시 말이 아니다.
    박씨의 남편 방영민씨는 사고의 원인은 명쾌하게 규명되지 않고 수사가 마무리된 것이 서운하다. 하지만 자신이 나서서 어떤 행동이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 상대가 말없이 버티고 선, 상식이 통하지 않는 북한이기 때문이다.
    치밀어 오르는 눈물 가슴으로 새기며 아들이 마음 상하지 않을까 두려워 슬픈 내색도 못하고 1년을 살았다.
    그래도 아들과 둘이 술잔을 기울인 날이면, 누워 천장 보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아내가 없는 방은 넓어 보인다고?
    그럴 것이다. 게다가 늘 보듬어주던 어머니까지 없는 방이라니….
    금강산 관광이 재개돼도 좋다. TV 화면에 금강산 모습 비치면 또다시 가슴 무너져 내리겠지만 우리 부자(父子)가 삭이면 될 테니.
    하지만 왜 돌아가셨는지, 누가 아내의,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갔는지는 꼭 알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이 기억 해주지 않길 바란다.
    한 마디씩 스쳐 지나 듯 던지는 위로, 고맙지만 두 부자는 너무 오래 힘들기 때문이다.

  • ▲ 단란했던 가족들 . ⓒ 뉴데일리
    ▲ 단란했던 가족들 . ⓒ 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