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제가 최근 중도 강화를 강조한 것은 경제적 정치적 양극화에 우리 사회 갈등의 뿌리가 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서민들의 삶에 온기가 돌게 하고,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데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입니다."

    이상은 민주평통 자문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한 연설의 한 대목이다. 우선, 경제적 양극화라는 게 있다면 그것이 모두 남의 탓만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자 정권'이란 인상은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만든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당선 되자 마자 이명박 당선인의 첫 공식행사는 전경련 방문이었다. '비지니스 프렌들리'라는 취지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당선인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첫 공식행사를 그렇게 장식한 것은, 경기침체에 치었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MB는 부자만 배려..."라는 인상을 주었을 수도 있다. 

    위축되었던 경제인들을 만나 격려를 해준 것은 물론 좋다. 그러나 '상징 조작' '이미지 관리' '정치적 효과' '심리적 효과' '홍보 효과' '광고 효과'라는 측면에서 종합적인 '정치 컴뮤니케이션'적 고려를 덜 했던 것  은 아닌지? 대통령은, 정치를 고려하지 않는 '경제 유일주의'로만 나가서는 곤란하다. 조각 인선 역시 '부동산 내각'의 인상을 던져주었다.

    '정치적 양극화'라고 한 대목에서도, 정치 현실을 마치 제3자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논평하는 듯한 식이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해설자가 아니다. "두 '극단'이 싸우는 것을 바라보자니..." 하는 식은 고도의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대통령이 취할 바 입장이 아니다. 

    '양극단'이라는 말 자체에도 곱씹어야 할 중요한 문제점이 도사려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대립상은 "헌법'과 反헌법' '쇠파이프와 反쇠파이프'의 대립이라는 측면을 안고 있다. 이 두 대칭적인 입장을 똑같은 '양극단'이라 부른다면, 범법자와 경찰관을 대등하게 보겠다는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그렇다면 시너와 화염병으로 무장한 위법자들과 경찰관들이 대치한 현장에 나갈 경우 "허, 왜들 저렇게 극단적으로 치고 받지? 중도적으로 하지 않고,,,쯧쯧쯧... " 할 셈인가?  

    대통령은 무엇을 해야 하는 자리인가? 그 자리는 한 마디로 헌법 질서를 지키는 자리다. 이에 비한다면 다른 이야기는 다 부차적인 것이다. 지금의 우리 사회의 문제는 헌법 질서가 존중받지 못하고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법질서에 대해 언급한 것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