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덴마크에서 네 번째로 큰 섬 롤란드. 인구 6만명의 이 섬은 1980년대까지 '죽어가던' 도시였다. 경제의 젖줄이었던 조선소들은 한국 등 신흥공업국들에 수주(受注) 물량을 빼앗겼고, 1986년 마지막 조선소가 문을 닫았다. 실업률은 30% 이상으로 치솟았다. '대공황'이었다.

    이 섬을 다시 살린 것은 1990년대 초부터 인근 바다에 들어선 1000여개의 풍력발전기였다. 롤란드 지방정부는 유럽의 첨단 신•재생에너지 기업들의 실험 단지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시작했다. 롤란드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총괄 진행하는 공기업 '발틱 시 솔루션(BASS)'의 얀 요한슨(Johanson) 에너지•환경 자문관은 "유럽연합 국가에서는 원래 유럽 산업인증마크(CE)가 없는 제품은 가동할 수 없지만, 롤란드에서는 지방정부가 나서서 법적 근거를 만들고 시험시설을 유치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의 엄격한 환경•안전 기준 탓에, 신기술 시험에 어려움을 겪던 에너지기업들이 롤란드섬으로 몰렸다. 특히 1999년 문을 연 베스타스 풍력 날개 공장은 화룡점정(畵龍點睛)이었다. 이 섬에서 가장 큰 도시 나크스코브의 해안으로 가면 넓은 들판에 줄을 맞춰 정렬돼 있는 수백개의 거대한 풍력발전기 날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날개의 길이만 40m가 넘는다. 이 베스타스 풍력 날개 공장이 전체 주민 1만5000명의 5%인 약 700명을 고용했다. 지금은 100여개 신재생에너지기업이 베스타스에 시험시설•공장 등을 건설했고, 2000명 이상이 관련 분야에 종사한다. 베스타스의 실업률은 이제 2~3%에 불과하다.

    롤란드에 설치된 풍력 발전기는 덴마크 전체 숫자의 10분의 1에 해당한다. 롤란드 한곳이 전국 풍력발전용량의 3분의 1인 1000MW를 담당한다. 근해 수심이 6~10m 정도로 얕아 풍력발전기 설치가 용이하고, 고른 풍질(風質) 등 최적의 조건을 갖춘 덕이다.

    롤란드는 2007년부터 또 다른 실험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100가구 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 베스텐스코브는 세계 최초의 '수소연료전지 마을'로 전환하고 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겨울의 밤 시간대에 특히 많이 생산되는 잉여 전기를 활용했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생산된 잉여 전력을 국내 다른 지역이나 외국에 싼 값에 팔았지만, 롤란드 지방 정부는 이런 잉여 전기를 수소 에너지로 재활용하기 위해 수소연료전지 마을을 고안해냈다.

    첫 수소연료전지 설치 주택의 안주인 브리타 한센(Hansen•50)씨는 "이제 난방비는 전혀 걱정이 없다"며 웃었다. 올해 말까지 이 마을의 35가구에 같은 시설이 설치되고, 2011년까지는 롤란드섬의 최소 1만 가구가 수소 에너지의 혜택을 받는다.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으니, 이산화탄소 배출도 없다. 롤란드섬 전체가 세계 최초의 '수소 경제 시대'를 여는 것이다.

    '신•재생 에너지의 섬' 롤란드를 만드는 데에는 주민들의 협조가 큰 역할을 했다. BASS의 요한센 자문관은 "재작년 11월 처음 가정용 수소연료전지를 설치하려고 마을 주민들을 모아 놓고 자원할 가구를 찾았을 때 100가구 중 60가구가 신청했다"며 "자기 몸에 연료전지를 달아준다고 해도 반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태훈/조선일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