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팅 뉴스'가 선정한 야구의 위대한 100인 중 2위, 미국을 대표하는 20세기 선수 8위에 랭크된 윌리 메이스는 야구를 위해 태어난 선수였다.

    어려서부터 여러 스포츠에 재능이 있었고 농구 풋볼을 하라고 대학에서 장학금 혜택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결국 야구를 택했다. 정확도 장타력 스피드 수비 어깨를 모두 갖춘 '5툴' 플레이어의 대표적인 선수로 알려진 그는 "최고의 타자는 테드 윌리엄스지만 최고의 선수는 윌리 메이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면에서 우수한 기량을 보여준 선수다.

    그의 통산 홈런 4위(660) 타점 10위(1903) 역시 훌륭한 성적이지만 베이브 루스 다음으로 높은 평가를 받기는 다소 부족함이 있다. 하지만 그의 위대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통계로 판단할 수 없는 선수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를 평가하는 대표적인 모습은 호타준족의 플레이, 뛰어난 수비를 바탕으로 한 역사상 최고의 중견수, 철저한 자기 관리 등이다.

    메이스는 1950년~6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호타준족 선수였다. 1950년대 가장 많은 도루(179개)를 기록했고 300(홈런)-300(도루)를 기록한 첫 선수이기도 하다. 물론 당시 리키 핸더슨, 빈스 콜맨, 팀 레인스와 같은 뛰어난 대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도루가 필요했던, 도루의 가치를 알던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기록으로만 봐서는 부족한 면이 있지만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수였다. 도루의 가치를 알게 된 것은 투수들의 기세로 투고타저가 가장 심했던 1960년대가 지나서야 가능했다.
     
    호타준족의 메이스보다 더 익숙하게 와닿는 장면은 1954년 월드 시리즈 1차전에서 보여준 'The Catch'가 될 것이다. 140m 가량 뻗은 공을 따라가서 잡는다는 것은 타구 판단 능력과 빠른 발, 정확한 글러브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했기 때문에 그 장면 하나로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 장면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12개의 골드글러브가 그의 수비를 잘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메이저리그에서 13시즌 연속으로 매년 150경기 이상 출장한 선수는 누구일까. 그 답은 윌리 메이스다. 철인으로 유명한 칼 립켄 주니어가 12년 연속이라고 생각해본다면 메이스의 자기 관리 또한 철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랬기에 홈런을 660개나 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전쟁(1952-53년 참전)으로 한 시즌 반을 보내지 않았다면 13시즌이 15시즌이 되었을 수도 있고 루스의 홈런 기록을 깬 건 행크 아론이 아닌 메이스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재키 로빈슨이 흑인 선수로 메이저 리그에 들어왔을 때도 존재했던 인종 차별은 메이스가 있을 때도 크게 나아진 건 없었다. 그는 경기에서도 자신과 싸워야 했고 경기 밖에서도 자신과 싸워야 했다. 자신과 끝없는 싸움을 해야했던 '헤이 세이 키드','배리 본즈의 대부' 윌리 메이스의 위대함을 판단하는 것은 기록 한 장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통산 기록(1951-1973, 명예의 전당: 1979)
    타율 .302, 홈런 660, 타점 1903, 안타 3283, 도루 338
    영구 결번: 24
    기타 설명
    1. 500홈런, 3000안타를 기록한 선수는 행크 아론, 에디 머레이, 라파엘 팔메이로, 윌리 메이스 4명 뿐이며 300-300 클럽 역시 배리 본즈, 안드레 도슨, 바비 본즈, 레지 샌더슨, 스티브 핀리, 윌리 메이스 6명 뿐이다.

    2. The Catch: 1954년 폴로 그라운드에서 열린 클리블랜드와의 WS 1차전(1954.9.24) 8회초 2-2동점에서 구원 투수 돈 리들의 공을 빅 워츠가 쳐서 가운데 펜스 쪽으로 깊은 타구를 날린 것을 메이스가 잡아 냈다. 이 장면은 '스포팅 뉴스'가 선정한 야구의 가장 위대한 순간 25가지 중에서 9위에 선정됐다.

    3. 1950년 스트라이크존이 타자의 겨드랑이부터 무릎 위까지로 축소되었다가 1963년 어깨 위에서 무릎 아래까지로 확대된다. 이에 따라 투고타저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고 해결책으로 1969년 다시 원래 겨드랑이에서 무릎 위까지로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