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년간 죽을 힘을 다해 침묵 속에 살아남았고, 10년간 가슴을 쥐어짜며 떠들어댔지만 공식적으로 그녀가 얻은 것은 패소 판결이었다. 대법원의 패소 판결 직후 송신도 할머니는 말한다. 그래도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고.

    10년간의 투쟁 끝에 비공식적으로 그녀가 얻은 것은 ‘마음’이다. “신도 믿지 않고, 사람도 믿지 않는다”는 송신도 할머니를 사람들의 울타리 안에 자리 잡게 한 것은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하 지원모임)’의 사람들이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안 나오게 생긴 사람”이었다고 송신도 할머니의 첫인상을 회상하는 지원모임의 사람들. 처음부터 그들에게 송신도 할머니가 요구한 것은 ‘마음’이었다. “너는 가정도 있고 새끼들도 있는데 자기 일처럼 내 일에 뛰어들 수 있겠느냐”고 다그치는 할머니에게 선뜻 약속의 손가락을 내어주던 그들은 약속대로 송신도 할머니에게 마음을 주었다. 그 마음은 하나의 파장이 되어 일본을 덮었고 이제 한국에 전해질 차례다.

    너무 많다고? 아직 충분치 않다!

    이 영화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 있냐는 관객의 질문에 안해룡 감독은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주위 분들에게 일본에 계신 욕쟁이 할머니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일본 위안부 문제는 3.1절이나 광복절 아이템”이지만 자신이 10년간의 지원모임의 영상기록물에서 찾은 것은 “할머니와 지원모임 사람들과의 관계”라고 짚어준 감독은 이 영화의 특별함에 대해 알리고 있다.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극장을 찾은 지루함을 감추지 못한 몇몇 학생들의 말처럼 종군 위안부에 대한 영상물은 많다. 대중에게 알려진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시리즈와 앤서니 길모어 감독의 <잊혀진 증인을 찾아서>, 김동완 감독의 <끝나지 않은 전쟁>이 있다. TV용 영상물과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 작업들까지 더한다면 그 양이 얼마가 될지 잘 모르겠다. (필자의 지인도 학교 과제물로 ‘나눔의 집’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든 적이 있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루는 방식

    작년 말, 미국의 박스오피스는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들로 채워졌다는 기사가 떴다. 톰 크루즈 주연의 <발키리>를 비롯해, <줄무늬 잠옷을 입은 소년>, <아담 레저렉티드(Adam Resurrected)>, <더 리더(The Reader)>,<디파이언스>등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기사였다.

    이미 여기저기서 논의된 대로 21세기는 홀로코스트 문학과 홀로코스트 산업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네오이마주에 개재된 <부재, 상실, 그리고 1980년 5월 18일 광주: 5.18의 영화적 재현과 그 한계>라는 글에서 임경규 교수는 “홀로코스트 문학의 홍수와 그에 따른 적절한 재현 방식의 모색은 상징적인 차원에서 볼 때 아우슈비츠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그들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자 하는 사회적 의식(ritual)이라 할 수 있다. 이 사회적 추모의 과정 속에서 폭력적 과거는 현재형의 언어로 수없이 반복된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과거형으로 기억될 수 있는 현상적 경험의 영역을 초과하는 리얼의 침전물이기 때문이다. 이 반복은 기억 주체의 의지적 반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기억이 주체를 압도한다. 기억의 반복적 침략은 주체를 과거 속에 함몰시키기도 하지만 그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그러기에 과거에 대한 추도와 장례식이 가능한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투쟁과 치유의 시간들의 기록

    홀로코스트를 다룬 문학을 비롯한 예술 작품은 해마다 전 세계적으로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반복해서 복기함으로써 세계는 망각을 통한 기억을 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종군 위안부를 다룬 작품들의 시선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해왔다. 95년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가 ‘나눔의 집’에 모여 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현재와, 이들의 증언을 통해 처참한 과거의 역사를 복원하는데 집중했다면, 2008년 김동원 감독 <끝나지 않은 전쟁>은 세계 각지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고증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아시아를 넘어선 세계의 문제로 각성시키고 있다. 그리고 2009년 안해룡 감독의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10년이 넘는 투쟁의 시간이 송신도 할머니에게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들로 인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겁나게 씩씩한 욕쟁이 송신도 할머니”의 모습과 환하게 웃으며 일본 노래와 한국 노래를 섞어 부르는 ‘나눔의 집’ 할머니들의 모습은 아픈 역사를 간접 경험한 세대에게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면죄부가 될지도 모르고, 어떤 비극들은 ‘홀로코스트 산업’이라 일컬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업적인 이익을 위해 이용될지도 모른다. 2007년 <화려한 휴가>가 개봉했을 때 5.18에 대해 논의되던 것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그에 따른 적절한 재현 방식의 고민과 모색은 필요하겠지만 오늘 다시 종군 위안부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을 만나는 일은 반갑기 그지없다.

    16세에 종군 위안부에 끌려간 송신도 할머니는 일본의 여고생들 앞에서 증언하던 날 유난히 눈물을 참지 못하고 목이 매여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힘겹게 내뱉은 말은 “다시는 나와 같은 일을 겪는 아이들이 없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여러 집회를 통해 “전쟁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해 온 송신도 할머니. 그녀는 결코 지지 않았다. 그녀는 잊지 않았고, 살아남았고, 이야기를 전했기 때문이다.  

    (글 제공: 이영 편집스탭, '네오이마쥬' neoimag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