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을 소재를 한 광고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또 1997년 외환위기 때 만연했던 '불황기' 광고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일, 동아일보 산업부는 광고회사 웰콤, HS 애드과 함께 10년 전 광고를 분석한 결과를 보도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를 담는 광고가 많이 제작되며, 올해는 10년 전과 달리 애국심을 자극하고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광고가 주를 이뤘다는 것이다. 또 광고의 주인공이 아버지에서 가족으로 바뀌었고, 가족간의 사랑과 믿음을 주제로 한 광고가 늘었다.

    광고의 '가족마케팅'은 방송을 비롯한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드라마의 경우 KBS ‘엄마가 뿔났다’ ‘조강지처클럽’ ‘내 사랑 금지옥엽’ 등에서 조연에 그쳤던 어머니 또는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가족의 의미를 재조명했고, 부모의 희생과 인내를 통해 가족의 사랑과 소중함을 전해줬다. 특히 ‘엄마가 뿔났다’나 ‘조강지처클럽’에서는 아이있는 부모의 재혼 문제를 담아 대안가족의 새로운 형태를 보여줬다.

    TV 예능 프로그램은 가족을 새로운 흥행 트렌드로 부각시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예를 들면, MBC ‘우리 결혼했어요’, ‘무한도전’, SBS ‘패밀리가 떴다’와 ‘좋아서’, KBS '1박2일' 등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가상 가족을 중심으로 낯선 곳에서 같이 숙식하는 등의 장치를 통해 출연자들간 가족애를 표현하거나, 그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비춰 대중에게 긍정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가족 마케팅은 공연문화계로도 확산되고 있다. 뮤지컬에서는 ‘지붕위의 바이올린’ ‘팬양의 화이트 버블쇼’ ‘친정엄마와 2박3일’ ‘잘자요, 엄마’ 등의 프로그램이, 문학계에서는 어머니를 소재로 지난달 출간된 신경숙씨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각각 빠른 속도로 인기몰이 중이다.

    이렇듯 TV방송, 그리고 공연 문학계에 이르기까지 전 문화 산업이 가족에 집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시대적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불황과 경제적 위기, 불안한 고용상태, 미취업자가 늘어나는 상황은 인간 존재에 대한 예우를 더 갈망하게 되고 그 인간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보듬어 주는 것이 가족이기에 사람들은 가족애를 다루는 데 관심을 갖는 것이다. 불황기에 개인 용도의 소비는 줄어들지만 가족을 위한 소비는 그대로거나, 오히려 늘어나는 것이 단적인 예다.

    그런데 10년 전 외환위기 때와 변함없이, 시대가 어려우면 가족으로 회귀하거나 아버지나 어머니 같은 역할에 충실하는 문화계 메카니즘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1997년 심각한 경기침체 속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김정현의 '아버지'라는 소설이 있었다. 이 책이 화제가 되면서 “아빠 힘내세요”라는 광고가 인기리에 방송됐고, 아버지를 주제로 한 많은 쇼 버라이어트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그리고 2009년, 이제 그 대상이 아버지에서 가족으로 변화되었을 뿐이지 않은가.

    물론 가족주의 드라마 또는 예능 프로그램은 입양, 재혼, 동거로 맺어진 비혈연 가족을 등장시키거나, ‘가상의 가족’으로 그 전까지 유행했던 불륜 이혼 등을 다룬 ‘반(反)가족주의, 탈가족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가족이기주의에서 가족중심주의로 작품 내 태도의 변화이지 불황과 같은 시대적 상황과 견주어보면 레퍼토리와 분위기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의 한국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주목해 볼만 하다. 중국은 산업화와 자본주의 급변기를 겪으면서 가족 해체와 개인 소외 문제를 겪었다. 또 경기가 호황이고 개인이 잘 나가는 분위기에서 가족은 자연스럽게 부차적으로 치부됐다. 이 때 중국은 ‘대장금’ ‘부모님 전상서’와 같은 한국 가족 드라마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다시 말해 활황기에는 가족보다는 개인 성공을 다루는 드라마 등의 방송이 활개를 치기 마련이다. 이를 달리 접근해보면 불황기에 현실과 반대되는 설정으로 시청자의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는 작품을 구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 문화계도 불황이라는 어려운 시대상황 속에서 ‘우리이웃’, ‘내 가족’이라는 관계에만 얽매이지 말고, ‘나’ 그리고 ‘홀로’ 라는 개인의 자립성에 초점을 둔 문화 콘텐츠를 구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불황일수록 내면에 숨겨진 욕망을 움트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문화는 바로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아는 시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