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 '아침논단'에 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쓴 '오바마 당선 보고 놀랐던 가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미국 역사상 오바마만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대통령 당선자는 없었다. 오대양 육대주가 잠시 공황도 잊은 채 그의 당선을 경축했다. 50년 이래 가장 많은 표로 그를 밀어준 미국민, 새 시대를 꿈꾸는 중남미인과 유럽인, 케냐인, 아프리카인, 오바마의 소싯적 고향 인도네시아와 아시아 전역의 회교도, 이라크와 북한, 매케인 낙선에 안도한 월남, 오바마시(小浜市)가 있는 일본 열도도 같이 환호했다. 세계의 오지에서 온 검은 핏줄이 아프리카·아랍 이름을 섞어 달고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남북전쟁만이 아니라 마치 '온갖 억압과 차별의 세계사'도 마감하는 듯한 거룩한 천명 같은 것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좀 착잡하기도 하다. 지난 5년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랄까. 변방 출신이기 때문에 혹시 '우월적 열등감'으로 착종된 이중인격자? 외교의 문외한으로 한미관계를 어지럽힐 '미국 노무현'? 서민과 중산층을 살린답시고 되레 죽이는 '진보적' 신참내기? 그의 시장철학과 정치노선은? … 의문이 꼬리를 문다.

    그러나 일단, 흔히 출세한 저학력자가 보이는 분열증세인 '우월적 열등감'은 문제될 것이 없을 듯하다. 컬럼비아·하버드대학을 거쳐 변호사와 시카고대학 교수를 역임한 미국의 대표 지성이 무슨 학력 열등감을 갖겠는가? 또 피부색도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세계적으로 선탠 가게가 만원이고, 어떤 의원의 화장색이 검어진다는 농담이 나올 만큼 검정이 상종가를 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을 아는 하원외교위원장 출신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에게 힐러리 국무장관을 묶어준 것을 보면, 한미관계를 흔들 '미국 노무현'도 아닌 것 같다. 12년 넘게 주 의회와 연방상원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으로 '신참'도 아니다.

    그러면 그의 시장철학은? 오바마는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을 전제한다. 따라서 '자유냐 보호냐' 하는 것은 쟁점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대선강령은, "미국 진보의 엔진인 자유시장"이란 그 "보이지 않는 손"을 반드시 "더 높은 원칙으로 조절해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천명한다. 자유시장은 자유방임의 '면허증'이 아니다. "개방적 공정경쟁을 위한 통행규칙을 적소에 설치하여 지키게 해야" 하고, 현 상황에서는 정부가 "경제의 관리자" 역할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이는 시장질서를 유지·감독하는 국가의 역할을 '필수'로 보는 클린턴식 시장철학의 계승이다. 이 철학은 우리 헌법 119조의 질서자유주의와도 통한다.

    나아가 오바마의 정치노선은 좌우를 뛰어넘어 공화당 신우익과 민주당 내 구좌파를 동시에 비판하는 클린턴의 '제3의 길'과 '중도개혁주의'를 좀 더 중도화하여 계승하고 있다. 그는 "절대적 우파와 좌파가 맞서 서로를 악마시하지만 80%의 국민은 중도다"라고 지적하면서 이런 시대에도 '좌익 아니면 우익'이라는 이분법을 강요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고 개탄한다. 이어 그는 당내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민주당 구좌파도 그 같은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1990년 이래 이 구좌파에 맞서 '제3의 길'을 주창해 온 민주당 중도파의 본산은 클린턴을 영입해 대통령으로 만든 민주당리더십협회(DLC)다. 이 DLC의 현직 회장 앨 프롬은 전부터 "오바마와 DLC의 정책이 같다"고 말해 왔다. 그리고 브루스 리드 DLC 의장은 최근 오바마를 "클린턴 계승자"로 단언했다.

    오바마의 이런 중도노선은 인사에서도 드러난다. 전 대선강령기초위원장 재닛 나폴리타노(국토안보부장관), 램 이매뉴얼(대통령비서실장) 등은 DLC 인사이고, 힐러리와 가이트너(재무) 외에 백악관 요직의 서머스, 퍼먼, 오스자그 등은 다 클린턴 사람들이다. 펠로시 하원의장도 '중도적 국정운영' 메시지로 그의 인사를 뒷받침했다. 오바마의 노선은 80%의 '신다수파'를 대변하는 '새로운 제3의 길(The New Third Way)'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러니 전혀 착잡해할 것까지는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