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자 조선일보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송희영 논설실장이 쓴 "금융 쇼크에서 해방되는 날은 언제쯤일까"입니다. 네티즌 여러분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세계 경제 위기가 곳곳에서 참혹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가운데 경제학자와 이코노미스트들의 견해를 몇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독감설이다. 이번 위기를 인류 경제가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지독한 변종(變種) 독감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보는 의견이다. 신종 바이러스란 도무지 내용을 알 수 없는 각종 금융 파생상품을 말한다.

    그동안 전 세계에 돈이 흘러 넘친 덕분에 감염 속도가 빨랐고, 이제 아이슬란드 같은 중환자를 만들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독감설 지지자들은 대개 내년이면 소동이 바닥을 치고, 2010년부터는 회복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쇼크가 최소한 6개월 이상 더 갈 것이라는 암시다.

    처방전을 내놓을 유력 인사는 미국의 새 대통령이고, 그가 리더십을 발휘해주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다만 7000억 달러로는 부실의 구멍을 다 메울 수 없으므로 추가로 부실 금융회사에 미국 정부가 자본금을 출자해 상당부분 국유화 조치를 하고, 경기 부양책까지 내놓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3부능선 언저리엔 도달했지만 꼭대기까지 가려면 더 고생해야 한다는 말이다.

    둘째는 30년 중병설(重病說)이다. 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전 세계가 규제철폐, 자유화, 개방화를 추진한 결과 글로벌 경제가 동시에 암(癌)에 걸리고 말았다는 식이다. 이런 주장은 레이건 대통령과 대처 총리를 암세포를 살포한 주범으로 꼽는다.

    30년 중병설은 세계화 흐름이 인간 사회에 선물한 것은 탐욕과 투기, 음모뿐이라고 비난하고, 감독과 규제를 강화하지 않는 한 장기불황이나 공황(恐慌)에 빠질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세계화 반대론자들은 때를 만난 듯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헤지 펀드, 외환거래 자유화 같은 것(소위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혐오감을 감추지 않는다.

    셋째 '100년 이내 처음' 설이다. '대공황(1929년) 이래 참사'라거나 '2차 대전 후 최대쇼크'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이런 전문가 중에는 평생 겪어본 일 가운데 가장 충격적이라는 뜻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지난 100년 동안 경제적으로나 군사-외교적으로 압도해온 미국을 재평가하는 견해가 담겨있다.

    '미국 패권 시대가 끝나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투다. 이들은 미국식 자본주의의 종말, 투자은행(IB)시대의 종언, 달러 기축(基軸)통화 체제의 붕괴, 미국 모델의 종지부 같은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조금 엉뚱해 보이지만 '400년 만에 겪는 역사의 단절'이라고 보는 초(超)장기 진단도 있다.

    400년 전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저금리 시대가 11년 동안 지속됐고, 그 저금리 혁명이 중세(中世)를 끝내고 르네상스 시대의 막을 열게 된 결정적 도화선이 됐다는 설명이다. 돈의 가격(이자율)이 너무 하락하는 바람에 유럽을 지탱해오던 칸막이 경제 시스템이 붕괴되었고, 종교 혁명과 함께 자본주의 시대로 가는 길을 열었다는 논리다.

    일본을 비롯, 선진국에서 지속되고 있는 오늘날의 저금리 국면은 오히려 그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한다. 오랫동안 저금리가 지속되어온 결과 더 높은 이윤을 좇는 투기성 자금이 금융 쇼크라는 폭탄을 반복해서 투하한다는 진단이다.

    전문가들 진단과 처방에는 반(反)세계화 논리, 미국 혐오 색채까지 뒤섞여 있어 온통 뒤죽박죽이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이번 쇼크는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이고, 설혹 이르면 내년 여름 이후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시대(時代)의 물줄기가 바뀔 수 있는 보다 큰 파동이 세계 경제 밑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내년 말에는 다 풀리고 좋아질 것이라고 지레 환호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달러 제국, 미국의 패권이 끝났다고 속단해서도 안 된다. 영국의 경우 1차 세계대전 이후 지배권을 미국에 넘겨주었으나, 파운드의 권위는 그후 30년 이상 더 유지했었다.

    이번에 한국도 참담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지금은 '준(準)외환위기' 국면의 공포감을 많은 국민들이 느끼고 있다.

    아무리 상처가 크더라도 앞으로 우리는 경제 활동이 폐쇄적이었던 중세의 암흑 천지로 가는 길을 거부하고, 인간의 자유와 행복이 더 보장되는 르네상스형(型) 경제로 가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한국은 개방과 자유화,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세계 13위 경제 국가로 성장한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