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4일자 오피니언면에 이재교 인하대 교수가 쓴 시론 '시민단체와 돈'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서울 통인동의 참여연대 빌딩 앞에는 이런 취지의 문답을 적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문: 이 건물은 무슨 돈으로 지었나요? 답: 회비와 순수한 후원금으로 지었습니다."

    그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시민단체가 돈이 없다는 통념과 달리 시가 40억원이나 되는 빌딩을 지었으니 질문하는 사람이 많았을 터이다. 그러나 참여연대는 현수막을 걸기에 앞서 왜 많은 시민들이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유를 먼저 생각했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정권이 바뀌어, 지난 9월8일 창립14주년 후원의 밤에서 대기업들 대부분이 후원금을 내지 않은 것은 그동안 낸 후원금이 꼭 순수했던 것만은 아니었다는 뜻인 듯하다.

    환경운동연합이 수사를 받고 있는 일은 시민단체의 도덕적 해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단체의 간부 2명이 지난 3년간 정부보조금과 기업후원금 6600만원을 개인계좌에 몰래 숨겨놓고 있다가 적발되었다는 것이다. 환경연합이 작년 10월에 이 사실을 적발하고도 자체적으로 무마한 것은 더 심각한 일이다. 환경연합은 작년 예산이 14억원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환경운동단체인데, 그 자금관리와 부정에 대한 처리가 동창회만도 못한 듯하다.

    좌파가 주도하는 시민운동이 위기를 맞고 있다. 운동권 세력이 1987년 민주화 이후 시민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한 이후 시민단체 신뢰도가 2003년까지 1위를 기록했지만 해마다 떨어져 작년엔 6위로 밀려났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2000년 총선의 낙선운동에서 거둔 대성공이 추락의 계기라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낙선대상자 86명 중 59명을 낙선시킨 혁혁한 성과가 시민단체의 발등을 찍었던 것이다. 낙선운동의 노골적인 정파성과 선거법 위반으로 국민의 시선이 싸늘해졌고, 국민은 견제 없는 권력을 견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시점에서 시민단체는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운동으로 전환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들 단체들은 운동권 타성을 버리지 못한 채 반(反) 한미FTA시위 등 불법시위에 늘 앞장섰다. 야간의 도심을 '해방구'로 만들었던 광우병 촛불시위에도 어김없이 참가했다. 그러면서도 이들 단체 중 상당수가 막대한 정부지원금을 받아 왔다. 총 36개 국가기관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불법시위를 주도한 광우병대책회의 참여단체 85곳에 총 122억원이 지원되었다는 것이다.

    불법시위에 앞장서는 시민단체들에 대한 정부지원을 금지하는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선진국이 시민운동에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반발하지만, 당찮다. 불법시위에 앞장서는 시민단체에 돈을 주는 선진국은 없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 횡행하는 선진국도 없다. 시민단체가 총선에 개입하여 낙선운동을 벌이거나 쇠고기수입을 구실로 대선불복을 선동하는 선진국도 없다.

    불법시위에 앞장섰던 시민단체는 정부지원금을 지정된 사업에 사용하였을 뿐 시위비용으로 쓰지는 않았으니 문제없다고 주장하지만 역시 당찮다. 시민단체가 실행하는 사업별로 다중인격체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정부지원사업비의 30~40%를 단체의 운영비로 전용한다는 사실은 '업계'의 상식이다.

    시민운동은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려는 시민들의 자발적 노력이다. 따라서 시민단체는 자체 회비로 운영되는 게 원칙이다. "돈 있는 곳에 마음 간다"고 했으니 정부에 대한 감시·비판활동을 하는 시민단체라면 특히 그러하다. 불법시위에 앞장서는 단체에 대하여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범법자의 생활비를 세금으로 대 주는 일이 되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고자 하는 시민단체라면 적어도 시민사회의 약속인 법은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