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1일자 오피니언면에 김영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가 기고한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학제간 연구 절대적으로 필요 '국민적 합의' 요식 행위는 안돼
     
    한반도 운하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귀동냥으로 들어왔지만 사회 초년생으로 제 앞가림하기에도 바빴던지라 들여다볼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야고보 1장 19절)는 거창한 이유라기보다는 운하에 관한 지식이 미천하여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운하에 관해 질문이라도 하면 그저 얼버무리다 말았고, 언론에 나와 자신 있게 의견을 피력하는 동료 전문가들을 보면 그들의 확신이 부러웠다.

    그러다 작년 한나라당 경선이 한창일 무렵, "공부 좀 해 봐야 알겠는데요"라는 후안무치의 답변으로는 도저히 부끄러워 견딜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무렵부터 관련 자료를 틈틈이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이제 찬반의 논리가 무언지 대충이나마 알게 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토론 등을 통해 반대 의견이 나오면 나올수록 찬성 쪽은 더욱 이론으로 중무장한다는 것이었다. 즉, 반대가 찬성을 도와주는 아이러니가 흥미로웠다. 반대 쪽은 개인적 관심에서 산발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있지만, 찬성 쪽은 대통령 당선이라는 목표 아래 체계적인 팀을 구성하여 불철주야로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 2월에는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개최한 최초의 행사라 할 수 있는 '물 관련 전문학회 합동 한반도 대운하 학술회의'에 참석하였다. 여기서 난 드디어 더 이상 내 개인적인 호기심으로는 운하 연구를 계속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쏟아내는 현안들이 내 머릿속에서 소화가 안 될 정도로 포화되었기 때문이다. 저렇게까지 많은 사안을 누가, 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더불어, 어느 누구도 "내가 운하 전문가"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도 함께 깨달았다. 운하야말로 다학제(多學際, interdisciplinary)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며 나는 그 중 일부만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 물류, 건설, 수자원, 환경, 문화 등 각종 전문가들을 포괄하는 '한반도 운하 연구단'을 하루속히 국가 주도로 만들어 검증을 시작하여야 한다. 연구하는 데만 5년이 걸려도 할 수 없다.

    연구와 검증이 진행되는 동안 정부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몇 천억 원밖에(?) 안 되는 한탄강 댐도 7년 이상의 찬반 논란을 거쳐 작년에 겨우 착공되었다. 하물며 수 개의 신규 댐과 10여 개의 주운(舟運) 보(洑)가 필요한 조 단위 예산의 경부 '대(大)'운하를 시작함에 있어, 정부는 국민적 합의를 몇 년으로 예상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국내에 아직 운하 공사에 필요한 '지침서' 하나 없는 실정에, 연내 착공이라든지 임기 내 완공 등의 정치적 욕심은 이제 과감히 버려야 한다. 약 2000㎞에 이르는 미국 미시시피 운하시스템은 170여 년 전 주운이 시작되었으나 현재의 갑문은 1960년도에 완공되는 긴 여정을 거쳤다. 이 운하시스템 중 일명 'MR.GO(Mississippi River-Gulf Outlet)' 운하는 경부운하 길이의 5분의 1인 122㎞밖에 안 되지만 1956년에 법령이 발효되어 1965년에 완공되었다.

    대통령, 국무총리, 그리고 국토해양부 장관까지 모두 취임 일성으로 "국민적 합의"를 강조하고 있는 뉴스는 반갑기 그지없다. 그러나 국민적 합의가 사업 추진을 위한 무마용 요식 행위에 그친다면, 노무현 정부 때와는 또 다른 형태의 국론 양극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 어떤 참신한 정책도 국론 분열을 딛고 실현될 수는 없다. 세계는 이미 참여를 요구하는 새로운 건설 문화 패러다임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