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4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통합민주당이 연일 ‘정치보복’ 규탄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지난 대선 때 BBK 폭로전을 주도한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고소·고발을 취하하지 않는 것은 야당탄압이요, 정치보복이라는 것이다. 피고소인 중의 한 사람인 정동영 전 대선후보는 그제 기자회견을 열어 “후진정치의 상징인 정치보복과 야당탄압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명백한 조짐이 있다”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손학규 대표가 고소·고발 일괄 취하를 요구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정치보복’으로 몰아 자신과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피해보려는 의도로 보인다.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이야말로 근거가 박약한 정치선동이다. 선거가 끝난 다음에 승자(勝者)가 패자(敗者)를 상대로 검찰에 고소·고발을 했다면 모를까, 문제의 고소·고발은 모두 대선 당시 이뤄진 것이다. 형평성을 따지더라도, 이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들은 이른바 BBK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에 이어 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의 전신)이 대선 직전 통과시킨 특검법의 조사대상이 됐다.

    정 전 후보와 민주당 의원들이 받고 있는 혐의는 형법상 명예훼손죄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다. 허위사실 공표죄는 5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선거법 위반은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만 받아도 국회의원직을 상실한다. 정 전 후보와 민주당 의원들로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고소·고발이 있으면 검찰이 수사하는 것은 당연하고 기소 여부는 수사가 끝나봐야 알 수 있다. 기소를 하더라도 유무죄(有無罪)의 최종 판단은 사법부가 내린다. 사법부의 판결도 받아보지 않고 정치보복 운운하는 것은 사법부에 대한 모독이고, 법치(法治)에 대한 도전이다.

    무책임한 흑색선전으로 유권자의 눈과 귀를 가리고도 책임지지 않는 정치가 대선 때마다 되풀이됐다. 2002년의 김대업 ‘병풍(兵風)’이나 작년의 ‘BBK 기획 폭로’ 같은 악습의 고리를 이번에 끊지 않으면 5년 뒤 선거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소지가 많다. 그래서는 정치 선진화도, 국가 선진화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