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4일자 오피니언면에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쓴 칼럼 '정권 교체의 첫 선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들은 얘기다. 설을 앞두고 이명박 당선인이 봉천동 원당시장을 찾았다. 설 경기가 어떤지, 상인들 형편이 어떤지 궁금했을 것이다. 당선인이 생선가게 앞에 멈췄다. 생선 자르는 도마가 말끔했다. 아직 개시도 못한 것을 직감한 당선인은 고등어 두 손을 주문했다. 토막 낸 고등어를 건네주는 주인 할머니의 손은 약간 떨렸고, 급기야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번졌다. 지난달 28일, 진용이 갖춰지지 않은 국무회의의 첫 안건은 ‘라면값 100원 인상’이었다. 대통령이 100원의 충격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이게 대체 얼마 만이냐 싶은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정말 불행하게도 대통령을 보좌할 국무회의는 아직 출정식도 못한 반쪽 내각이었다. 재산 평균 39억원. 대체로 투기 혐의가 짙고, 더러는 논문표절도 했고, 더러는 서민정서와 동떨어진 명사들이었다. 변명도 어이없었다. 아니, 사납게 표현하면 힘없는 사람들의 염장을 질러댔다. 정당하게 재산을 모은 ‘부자들의 모임’이라면 부러움을 샀을지도 모른다. 재력에 권력까지 갖췄으니 가위 보수 진영의 명사 클럽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재촌자경(在村自耕)’이 농지 소유의 전제임을 모르는 국민들이 있을까. 이해찬 전 총리가 400여 평 남짓한 포도밭을 빌려줬다고 혼쭐이 난 게 고작 이태 전이다. 그런데 이 정권에서 농지 소유는 장관 후보의 요건으로 변했다. ‘놀러갔다가 친구가 권유해서 샀다’는 그 당당한 설명은 부동산개발사 투기교본 1조에 나온다. 돈 없어 황금알을 눈앞에서 놓친 사람이 태반인데, 장관들의 이재 경력은 투기 유형 리스트였다. 여섯 편의 논문을 열네 편으로 늘리는 교수의 복제행위는 땅을 잘라 갑절로 파는 떴다방 투기행위와 꼭 같다. 이들이 ‘일류 국가 건설을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으로 시작하자’고 선포한 ‘선진화 대통령’을 보좌할 인물들이었다.

    각료 중 최고의 재력을 자랑하는 문화부 장관은 자신이 운영하는 극단 단원들에게 사회보험료를 챙겨주지 않았다. 불법은 아니지만, 어쩐지 문화적 기대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기 관내에 굶주린 사람이 없도록 베풀었다는 경주 최부자의 에토스를 모르는 모양이다. 여의도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장관도 있었다. 그곳을 축복받은 땅으로 알고 사는 주민들의 심정은 어떨까. 골프회원권을 싸구려라고 한다면, 돈 없어 골프할 엄두를 못 내는 사람들은 ‘떨이 인생’이다. 북한과 머리 맞대고 살아가야 하는 이 분단 현실을 관장할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가족은 모두 외국 국적 소유자였다. 그런데 ‘그게 어떠냐?’는 반문이 더 기 질리게 만든다. 그 사람이 장관이 돼 혹시 개성공단에라도 가서 ‘북한은 적’이라고 말할 장면을 상상하면 끔찍하다. 북한 당국은 개성공단을 즉각 폐쇄할 터이고, 그곳 중소기업들은 줄도산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라면값 인상을 우려하면서 ‘현장주의’를 요구했다. 현장의 논리와 시름을 중시하라는 주문일 터인데, 각 부처 수장들은 ‘구름 위의 산책자’였다.

    국민들은 안타깝다. 747 보잉기가 시동은 걸었으나 제대로 이륙하지 못하는 그 풍경이 말이다. 관제탑에서 이륙 대기를 발령한 원인은 ‘과거 불문, 측근 중용’을 고집하는 대통령의 인사스타일 때문이다. ‘투옥 경력, 운동권 중용’을 끝내 지켜낸 노무현 정권의 코드인사와 다를 바 없다. 무엇보다 해결할 짐을 잔뜩 실은 보잉기가 어찌어찌 이륙했다고 해도 ‘3, 5, 7 기상악화’가 기다린다. 예상컨대 3월 교육 관련 투쟁 집회, 5월 노동파업, 7월 대운하 관련 전국 집회가 정국을 강타할 것이고, 여기에 4월 총선이 여소야대라는 전통적 형세로 복귀한다고 가정하면 실용정부의 통치력은 지난 정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약화될 위험이 있다. 이런 때에 사회정책팀이 자체 결함을 정비 중이니 불안감은 증폭된다. 보건복지가족부의 수장은 이미 여러 가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고, 청년실업이 시한폭탄처럼 도사린 이 마당에 노동부 장관은 실업문제 전문가가 아니라고 실토했다. 여성·환경부 장관은 낙마했다. 복지·노동·여성·환경문제를 총체적으로 조율할 사회정책수석은 가족 문제 전공자이자 표절 시비에 걸린 교수다. 이명박 정부의 발목을 잡을 현안들은 경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 영역에 더 많이 잠복해 있다는 것을 눈치채기는 했는지. ‘투기 내각’은 염장을 질렀고, ‘구름 내각’은 불안감을 조성했다. 국민들은 이것이 정권교체의 첫 선물이 될 줄 짐작이라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