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4일자 오피니언면에 언론인 류근일씨가 쓴 <'이명박 실용'을 시험할 몇 가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를 열자는 이명박 정부의 키워드를 두고 우파진영 내부에는 이런저런 논란들이 분분하다. 그러나 무슨 문제든 너무 개념적으로만 따지면 끝없는 말싸움만 이어질 뿐, 좀처럼 결론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문제를 그런 식으로 제기하는 대신 "지난 10년의 잘못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던지는 편이 훨씬 더 명료할 것이다. 류우익 대통령실장은 지난 10년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대다수 유권자들은 "지난 10년에 문제 있다"고 생각했기에 정권연장 아닌 정권교체를 선택했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년의 잘못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정면으로 맞받아 바로잡을 용의가 있는지만 밝히면 될 것이다.

    지난 10년은 어떤 세월이었는가? 한마디로, '대한민국 60년'을 민족사적 정통성에 반(反)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관(史觀)이 판치던 세월이었다. 이에 비한다면 지난 10년을 그저 '무능한 좌파'니 '이념갈등의 시대'니 하는 말로 설명하는 것은 너무 후(厚)한 표현일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또 "이념 논란으로 간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에 가장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도 바로 이런 낡은 좌파적 이념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 점에서 그런 왜곡된 사관을 가장 실효성 있게 극복할 길이 바로 '실용주의'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굳이 시비할 대상이 아니다. 어떤 방법으로 하든, 어떤 키워드를 내걸든, 좌우간 지난 10년의 그릇된 흐름을 바로잡아 '대한민국'의 초석 위에 놓겠다는 확고한 의지만 보인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일단 진일보(進一步)한 것이니까. 문제는 빠른 시일 안에 몇가지 기본적인 사항과 관련해서만은 이명박 정부의 그런 의지에 진정성과 결연함이 담겨있는 징표를 내보여야 할 것이란 점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대북정책 바로잡기다. 김정일이 서해(西海)에서 도발했을 때 우리의 대응에 "반성할 점이 있었다"고 하던 시절이 지난 10년이었다. 그리고 김정일이 핵실험을 해도 우리는 그저 "무조건, 속절없이 갖다 바치기만 하면 그만"이라던 시절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별 짓 다하고도 뺨 맞은' 실속 없는 대북정책에서 과연 어떻게 '실용주의적'으로 벗어날 것인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친북좌파와 섣부른 자칭 중도주의자들은 "그렇다면 대북 강경책으로 전쟁하자는 거냐?"고 왜곡한다. 그러나 이것은 '강경' '온건'의 문제가 아니라, 제정신 차렸느냐 못 차렸느냐의 원초적인 문제다. 정권이 바뀌었는데 여지껏 전쟁이 나지 않는 것도 희한한 노릇이다.

    새 정부가 또 하나 해야 할 것은 우리 2세들의 영혼을 훔쳐 가고 있는 반(反)대한민국적 역사교과서 문제를 비롯해 문화계, 정보통신, 미디어 등 사회 각 분야를 침식한 좌파 헤게모니에 대한 대응이다. 이 문제에 대한 '이명박 실용주의'의 대책이 과연 무엇인가―이것이 중요하다. 역사와 문화와 사회를 반(反)실용주의에 내주고 있는 한, '실용주의'라는 것 자체가 어떻게 설 땅을 얻을 것인가? 이 문제 역시 그래서 한가로운 '이념 논란'이 아니라 '실용주의'의 본질이 걸린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다.

    이명박 정부가 명운을 걸고 답해야 할 세 번째 시험 문항은 그들이 의도하는 '실용주의적' 교육개혁은 과연 어떤 것이냐 하는 물음이다. 교육이 반 (反)실용주의 원조(元祖)인 좌파 이념집단과 부처 이기주의에 매달린 관료집단에 발목 잡혀 있는 한, 우리 교육의 실용주의적 전환은 기대할 수 없다. 

    '이명박 실용'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국민들은 시대가 정말로 바뀌었는지 안 바뀌었는지를 '확정 판결'할 것이다. 여기다 '매 맞는 경찰상(像)'도 함께 사라진다면 '잃어버린 10년'은 정말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모든 일들에는 늘 타이밍이 중요한 만큼 이명박 정부는 실기(失機)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