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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 뒤 농담조로 "'저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하는데'라는 아쉬움과 부러움이 있었다"며 최근 자신의 심경을 털어놨다. 손 대표의 대권욕은 강하다.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는 우려에도, 자신의 측근들조차 따라나서지 않는 상황에서도 '한나라당 탈당'이란 모험을 강행했다.
기반도 없는 대통합민주신당에 들어가 당 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정동영 후보와 경쟁해 결국 무릎을 꿇었지만 손 대표는 결과에 승복했다. 그리곤 자세를 낮춰 정 후보를 적극 지원했다. 당시 당내에선 "정 후보 보다 더 열심히 뛴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대선 참패 뒤 손 대표는 당으로 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한나라당 출신'이란 점 때문에 당내 비토세력이 만만치 않았지만 그는 '제1 야당대표'로 복귀했다. 이번 대표의 역할은 사실상 '총선용 얼굴마담'이다. 임기도 4월 총선까지다. 대선 참패 뒤인지라 당내 여러 계파가 총선을 앞두고 대거 이탈을 준비하는 등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대표직 수락이 "독배를 드는 것"이라고 주변에서 우려했지만 손 대표는 다시 승부수를 던졌다. 위험부담이 크지만 최악 상황에서 맞는 4·9 총선에서 선전할 경우 손 대표는 다시 차기 대권주자로 우뚝 설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우려 속에 출범했지만 손 대표의 당 운영에 대한 중간평가는 우호적이다. 분당 위기로 치닫았던 당을 비교적 잘 추슬렀다는 평이다. 대표 수락 전 측근들은 공천개입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손 대표는 '공천'에서 손을 떼며 자칫 벌어질 공천을 둘러싼 계파간 신경전에도 개입하지 않았다. 이런 손 대표의 움직임이 자칫 벌어질 수 있는 '당권 경쟁'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혔다는 평이다.자당에선 여전히 몸을 낮추고 있다. 의원총회가 열릴 때면 참석한 의원들에게 먼저 다가가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지만 '계파정치를 하려한다'는 비판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런 당내 모습과 달리 손 대표의 외부 움직임은 크게 다르다. 출범 초 '제3의 길'이란 새 노선을 제시하면서 '이명박 정부, 한나라당과의 차이가 뭐냐'는 비판을 받았지만 최근 손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손 대표는 자신의 카운터파트를 여당 대표가 아닌 이 대통령으로 삼고 있다.
처리에 난항을 겪은 정부조직법 개편안 문제를 두고도 손 대표는 '이명박 vs 손학규' 구도를 만들어 협상을 벌였다. 카운터파트가 '이명박'이란 점을 각인시킨 것으로 이는 자신의 위치를 확인시키려 한 것으로 읽힌다. 차기 대권주자임을 부각시키려 했다는 게 당 안팎의 분석이다. 대표 취임 뒤 이 대통령과는 면담을 한 반면,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회동제안에도 손 대표는 응하지 않았다. 정부조직 개편안 협상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언론을 통해 면담을 제안하자 "날 무시하느냐"며 거절하기도 했다.
손 대표의 발언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명박 정부 첫 내각 인준을 두고 정부 여당과 각을 세우고 있는 손 대표는 이번에도 한나라당 비판은 외면한 채 이 대통령을 공격했다.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가 있던 지난달 29일에도 손 대표는 이 대통령에게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문제가 없어 찍어줬는 줄 아느냐"며 첫 내각 인선을 강하게 비판했다. 첫 내각에 비판여론이 큰 만큼 이 대통령과의 전면전이 '해볼만 한 게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읽힌다. 그는 "이 대통령의 자세가 문제"라며 이번 '이명박 내각' 논란 최종 책임이 이 대통령에게 있음을 강조했다. "벌써부터 국민을 무시하느냐"고도 했다. 강 대표의 회동 제안은 거절하면서도 손 대표는 이 대통령에게 자신을 "정치 파트너로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