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 '전문기자 칼럼'에 이 신문 박선이 여성전문기자가 쓴 '여성리더십의 위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새 정부의 청와대 고위직과 첫 내각 명단에 올랐던 여성 3명이 여성 리더십의 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교수 출신인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 수석 내정자는 논문 표절 시비로,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와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문제가 됐다. 이 후보자는 대통령 취임식 하루 전날 전격 사퇴했고, 다른 두 사람도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새 정부의 첫 '간판 여성'들인 이들을 둘러싼 도덕성, 불법성 시비는 새 정부 출범에 '불협화음'을 낸 것만 문제가 아니다. 이들의 실패는 한국 사회 여성 리더십의 모델을 왜곡하고 망가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위기다.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는 사퇴하면서 "일생을 바르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저로선 이런 비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평생 아파트 한 채 마련하기도 빠듯한 보통 사람들이 "암이 아니라는 기념으로 (남편이) 사줬다"는 자신의 해명에 어떤 마음이 되었을지를 헤아린 흔적은 없다. 농사를 짓는 사람만 구입할 수 있는 절대 농지를 친척이 권해 샀다고 말한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해명은 결국 거짓말로 드러났지만, 화법도 황당했다. "자연의 일부로 땅을 사랑할 뿐 투기는 아니었다"니, 그럼 누구는 땅을 사랑하지 않아서 손바닥만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단 말인가.

    논문 표절, 불법 농지 취득 의혹은 유독 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성이어서 일어난 일들도 아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인사 때마다 물리게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문제다. 남성들이 지켜오고 있는 자리에 굳이 여성 기용을 요구하는 이유를 스스로 퇴색시켜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리더십의 핵심은 '남(男) 다름'이다. 산업사회를 지배해온 남성 리더십의 권력적 속성에 대한 대안(代案)으로, 보다 깨끗하고 보다 민주적인 리더십 모델로 주목 받는 것이 여성 리더십이다.

    피터 드러커는 21세기 정보화, 국제화 사회에서는 횡적 연계가 중요한 네트워크 구조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며, 기업과 조직, 나아가 한 사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도덕성과 배려, 민주적 의사 소통을 핵심으로 하는 여성 리더십이 필수 요건이라고 꼽는다. 철학자 정대현은 여성 리더십의 의미를 '성기성물(成己成物)' 개념으로 푼다. 나를 이룸과 만물을 이룸이 맞물려 있다고 보는 '성기성물' 리더십의 핵심은 옛 가정에서 어머니가 베풀었던 보살핌이다. 남성들과 똑같이 도덕적, 권력적 문제를 지닌 여성이라면 굳이 여성 리더십으로 '교체'를 요구할 근거가 없다.

    새 정부가 여성을 기용한 청와대 사회정책 수석과 여성부, 환경부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그늘을 찾아 다니는 자리다. 선진국에서 국방, 외교, 경제 등 국가 경영의 주류 부문으로 여성의 정치 리더십을 확장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는 전통적인'여성 몫'에 머물러 있는 것도 사실이다. 5년 전 노무현 정부 출범 때 여성 장관이 4명이었던 것에 비해 숫자도 적다. 그러나 정작 이번에 드러난 여성 리더십 위기의 본질은 숫자나 업무 영역의 제한 같은 외부 요인이 아니다. '관행'이라거나 '불법이 아니었다'는 말 뒤로 숨어서야 굳이 여성 리더십이 필요할 이유가 없다. 도덕성과 배려, 보살핌이라는 여성 리더십의 본질을 되찾는 인사는 우리 사회의 발전과 새로운 리더십 모델 확립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