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직 군의관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도입된 지 40년이 넘는 대표적 노후 기종인 UH-1H 헬기가 추락해 탑승 장병 7명 전원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것과 관련, 낡고 오래된 장비를 운영하는 군을 비판하고 나서 주목을 끌고 있다. 

    자신을 사고 인접 부대의 군의관(대위)이라고 밝힌 이 사람은 20일 '나는 어느 헬기와 폐기되려나'는 글을 한 인터넷 포털 게시판에 올려 "무슨 억지로 뻔히 보이는 위험을 내다보면서도 생떼 같은 젊은 목숨, 그것도 조국방위라는 숭고한 업을 묵묵히 수행하는 그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지 묻고 싶다. 헬기를 비롯한 우리나라 전투 장비의 연한이 얼마인지, 정말 그 장비의 내구성이라는 게 40년의 세월을 견딜 정도로 대단한 기술력으로 만들어지고 정비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또 그는 이번 사고 헬기 뿐 아니라 전체적인 군 장비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그는 "우리가 근무하는 의무대의 야전 앰뷸런스는 주행거리 20만 킬로를 훌쩍 넘긴 무려 21년 전의 것"이라며 "덜커덕 대는 앰뷸런스를 타고 1년에 대여섯 번 행군을 따라 의무지원을 가다가 내리막길을 만나면 운전병한테 차를 세우라하고 행군 제대가 내리막 저만치 멀어지면 차를 출발시킨다. 행여 브레이크라도 터져 행군 일행을 덮칠까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차마 군사 비밀일까 하여 우리 부대의 주력 전차를 포함한 여러 장비, 내가 전시에 사용해야 할 여러 수술 기구, 외상 처치용 장비에 대한 언급은 않겠지만 일부는 6.25 시절 쓰고 미군이 남겨 둔 것도 있을 정도"라고 혀를 찼다. 

    "나는 어느 헬기와 폐기되려나" 글 전문
    숭고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다 순직한 승무원, 병사, 그리고 의료인으로서 마지막까지 숭고한 의무를 다하고 순직한 군의관과 간호장교 여러분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생떼같은 아들을 잃은 부모님들과 사랑하는 남편, 아내를 잃은 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바로 인접한 군병원의 군의관, 간호장교, 의무병의 죽음에 오늘하루 마음이 무겁습니다. 인터넷에서 사진을 보니까 얼굴이 낯익은 분도 있어 더 마음이 아프고 TV에서 남겨진 가족들의 오열을 보노라니 그 슬픔에 가슴이 메어옵니다.

    저는 현역 대위이고 사고 병원의 인근 부대에서 근무하는 군의관입니다. 비록 현역의 신분으로 공개적으로 군에 대한 분노를 표하는 것이 위법인줄 알면서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오늘 소주 두세병은 마셔야 잠이 들것 같습니다.

    오늘 사고를 당한 동료 군의관의 자리에 내가 있었을 수 있으니 어쩌면 그분의 죽음이 나와 다른 군의관을 대신한 것이라는 생각에 슬픔과 함께 살아 숨쉬는 것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까지 듭니다.

    퇴근 후 제 품에 뛰어드는 어린 아들과 딸을 보면서, 엄마를 잃었다는 간호장교의 두 딸과 아직 복중에 있다는 군의관의 아이 생각에 눈물이 핑 돕니다. 장성한 아들을 하루 아침에 잃고 덧없이 목놓아 울던 어머니의 슬픔과 상실감을 무슨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몇 주전 산악 부대에서 근무하는, 공수교육까지 마친 선배 군의관과 식사하면서 헬기 후송을 하면서 헬기 한 번 타고 두 번 타기는 겁난다, 헬기 후송하면서 낙하산 안주면 안간다 했었다는 소리 들으며 농담처럼 웃어 넘긴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군의관한테는 복막염 환자를 헬기로 후송하려하니까 환자가 아픈 배를 움켜쥐고 벌떡 일어나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제가 후보생 시절 군사 교육 시간에 전투 장비를 수업하면서 미국에는 박물관에나 있는 헬기가 우리 나라는 아직도 하늘을 날아다닌다...미군이 보고 한국의 정비 기술에 혀를 내둘렀다라는 일화를 들었습니다.

    비단 헬기뿐만 아닙니다. 우리가 근무하는 의무대의 야전 앰뷸런스는 주행거리 20만 킬로를 훌쩍 넘긴 무려 21년 전의 것입니다. 처음으로 앰뷸런스를 타던 날..."아니 97년에 출고된거네??"하고 놀랐더니 운전병이 "그래도 이건 새것 축에 듭니다"라고 해서 또 한 번 놀랐습니다.

    덜커덕 대는 앰뷸런스를 타고 일년에 대여섯 번 행군을 따라 의무지원을 가다가 내리막길을 만나면 운전병한테 차를 세우라하고 행군 제대가 내리막 저만치 멀어지면 차를 출발시킵니다. 행여 브레이크라도 터져 행군 일행을 덮칠까 염려스럽기 때문입니다.

    차마 군사 비밀일까 하여 우리 부대의 주력 전차를 포함한 여러 장비, 내가 전시에 사용해야 할 여러 수술 기구, 외상 처치용 장비에 대한 언급은 않겠습니다만 일부는 6.25 시절 쓰고 미군이 남겨 둔 것도 있을 정도입니다.

    계급은 대위이나 직책상 군대의 내부 사정을 잘은 모르는 바이이지만 이번 사고를 보면서 내심 제가 두려움으로 부정하면서도 언젠가 발생할, 그러나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고의 현실화를 보는 것 같아 화가 나고 군에 대한 원망이 치밉니다.

    이번 사고 헬기 기종인 UH-1H 헬기의 보유 대수가 150여대, 그중 10대가 추락으로 소실되었다 하니 15대 중 한대는 추락한 셈입니다. 가히 놀라운 항공 사고 기록입니다.

    표면적인 항공기 보유 대수와 편제를 유지하기 위해 "날아다니는게 기적인" 헬기를 실전 배치하는 것이 아닌지 군당국에 물어보고 싶습니다. 아니...기동력을 요하는 상황에서 국방부 장관님과 여러 장성님들은 거리낌없이 UH-1H 헬기에 탑승하시는지, 복무중인 자제분들이 그 헬기에 몸을 맡기는 것에 안심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무슨 억지로 뻔히 보이는 위험을 내다보면서도 생떼같은 젊은 목숨, 그것도 조국방위라는 숭고한 업을 묵묵히 수행하는 그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헬기를 비롯한 우리 나라 전투 장비의 연한이 얼마인지, 정말 그 장비의 내구성이라는게 40년의 세월을 견딜 정도로 대단한 기술력으로 만들어지고 정비되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 나라의 헬기같은 고가 장비들은 거의 이번 사태와 같은 추락으로 폐기되는 것이 정해진 연한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생떼같은 목숨을 같이 연소하면서...승무원과 병사도 같이 폐기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과연 40년 묵은 헬기 한 대가 7명의 목숨보다 가치있는 것인지...

    나도 군의관인지라 내앞에 시촉을 다투는 병사가 오거든 언제든 헬기 후송을 해야 될 상황에 처하게 될터...그 때 내가 탈 헬기가 폐기될 운명이라면 나도 당연히 그 헬기와 폐기될 터...나와 같이 폐기될 그 헬기는 지금 어느 하늘을 날고 있을까요?

    오늘처럼 허무한 죽음들앞에 머리위를 오가는 헬기를 바라보면서 처연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순직한 여러 장병들의 목숨이 아깝지 않게, 이번 사고를 거울삼아 철저히 사고 경위를 가리고 재발 방지 대책을 논해야 합니다. 남겨진 가족들에게 국가의 책임을 다해 위로하고 부양하는 것이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하지 않는 길입니다.

    병영 울타리 너머로 그리움의 눈빛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밀도높은 젊음의 한 시절을 국가의 부름앞에 겸허히 내놓고 복무중인 병사들을 바라보며 대견해 하면서도 한편으로 측은한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국가에 맡긴 부모와 가족에게 탈없이 돌려보내주는 것은 군당국의 가장 일차적인 책임입니다. 개개인 모두가 군의 어느 자산보다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남의 일 같지 않은 동료 군의관과 여러 장병들이 죽음앞에 생각이 많은 밤, 대답없는 푸념한 번 늘어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