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1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김두우 수석 논설위원이 쓴 '손학규 부활하나 '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 번의 선택 잘못으로 나락에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늘 선택을 강요받는 정치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문제는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 해도 한두 번쯤 삐끗하는 일이 없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잘못된 선택으로 절망적 상황을 맞게 되면 헤어나지 못하고 자멸하고 만다. 극히 일부만이 극복하고 살아남는다. 그런 이에게는 ‘내공(內功)’이 더해진다.

    특히 대통령선거가 있던 해에는 수많은 정치지도자가 순간의 선택을 그르쳐 부서지고 망가진다.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표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나라당에서 의원과 장관, 경기지사를 거치면서 정치적으로 성장했다. 운동권 출신이면서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고, 개혁적이면서 경제를 중시했다. 한나라당과는 맞지 않은 듯한 그의 비극성과 능력이 부조화 속의 조화를 이루면서 언론과 지식인의 지지를 받았다. 손학규는 이명박·박근혜와는 지지율에서 많은 차이가 났지만 ‘빅3’로 불렸다. 그러다가 그는 지난해 3월 한나라당을 탈당했고 결국 범여권행을 택했다. 신당의 경선에서 그가 패배했을 때 많은 이가 “손학규는 이제 끝났다”고 했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배신자의 말로”라며 고소해 했고, 진보 좌파 진영에서는 “손학규는 우리의 적자(嫡子)가 아니다”며 이를 당연시했다.

    그런 손학규가 다시 등장했다. 통합신당의 대표로 선출됐다. 신당의 수도권 의원들의 전폭적 지지로 가능했다. 호남만을 생각한다면 이번 대선에서 80% 이상 득표한 정동영 후보나 그가 미는 사람을 대표로 내세우는 게 낫다. 그러나 그래서는 신당은 ‘호남당’으로 급격히 위축된다. 국민이 대선에서 노무현 정권을 심판한 마당에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를 전면에 세울 수도 없었다. 그래서 손학규가 4월 9일 18대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국민에게 ‘견제와 균형 세력의 복원’을 호소할 신당의 얼굴로 선택된 것이다.

    그에게는 지금 상황이 위기이자 기회다. ‘독배(毒杯)가 아닌가’ 의심할 것도,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 한탄할 것도 없다. 위기상황이 아니었다면 손학규는 신당의 대표가 결코 될 수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여건은 최악이다. 차라리 정동영이 2위가 아닌 3위를 했다면 진보는 폐허 위에 새로 시작할 수라도 있었을 것이기에.

    일단 대표가 된 뒤 그의 움직임은 나쁘지 않다. 그는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협조적이면서 가장 단호한 야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제3의 길’을 제시했다. 민생 행보를 강화하고 공천 혁명을 다짐했다. 당 체질을 바꿔 나가는 데 속도감과 추진력이 있어 보인다. 방향성 설정도 일단 긍정적이다.

    그러나 거기에 그쳐서는 신당도 손학규도 미래가 없다. 그 정도의 변신만으로는 기껏 국민의 곁눈길 한번 받을 뿐이다. 지금은 무관심에서 겨우 ‘차가운 관심’으로 옮겨가는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국민과 시대가 ‘선진화’를 갈망하는 상황에서 과거의 진보 좌파로는 안 된다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선진화로 가되 이명박 정권과는 다른 ‘제3의 길’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

    그것만으로는 어림없다. 방향을 잡았으니 거기에 걸맞은 콘텐트를 내놔야 한다. 한나라당이나 보수, 극단적 신자유주의의 아류여서는 안 된다. 선진화의 길로 가되 거기에 진보의 가치가 더해져야 한다. 도덕성과 복지정책, 기회의 균등이 녹아 들어 있어야 한다. 

    그 길은 칼날과 같이 좁다.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국민이 보냈던 수많은 경고 신호를 무시한 대가다. 자칫하면 한나라당 2중대로 전락할 수도, 야당으로서의 존재가치조차 몽땅 잃을 수도 있다. 그래도 가야 하는 길이다. 그의 정체성을 문제 삼는 내부의 도전을 수습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총선까지 남은 78일에 자신의 능력과 경험과 인맥과 콘텐트를 모두 내놔야 한다. 성공하면 신당은 대안 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고 손학규도 재기하겠지만, 실패하면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