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4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강천석 주필이 쓴 칼럼 <"당신 친미파구먼…나가있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어제 아침 신문을 보고 많은 학부모들이 적잖이 고소해 했을 듯합니다. 이 나라의 모든 학교와 학부모를 어르고 겁주던 교육부가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혼쭐이 나 설설 기었다는 기사 말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이념지향적 정책 때문에 교육부로선 정말 힘든 기간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엊그제까지 모시던 정권을 이렇게 패대기치다니, 야박하기 그지없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인수위에서 낯빛이 새하얘졌을 교육부 관리들의 모습과 겹쳐 문득 5년 전 바로 이맘때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인수위는 진짜 혁명군 사령부였습니다. 살벌했지요. 정권이 교체된 것도 아니고 같은 정당이 정권을 승계했을 뿐인데 왜 저러는지 다들 감(感)을 잡지 못하고 허둥댔습니다.

    그때 그 사건이 터졌습니다. 당선자에게 외교분야 현안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 자리였다고 합니다. 브리핑 팀의 인솔자는 아마 당시 대통령의 특보(特補)였다고 하지요. 브리핑이 시작되고 얼마 후, 고함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사무실 밖으로 튕겨져 나왔습니다. 혁명군 사령부로 보고하러 들어가면서 다들 얼마나 조마조마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일을 당했으니 사색(死色)이 다 됐겠지요.

    사무실 안에 있던 누구도 입을 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도 남을 분위기였지요. 그때 벌어진 장면을 어렴풋이나마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몇 마디를 얻어듣게 된 건 몇 달이 더 지나 혁명군이 청와대와 정부 부처로 옮겨간 다음 입니다.

    주(主) 보고자가 당선자 쪽에 한미(韓美)관계를 이야기 하는 도중, 배석했던 사람이 몇 마디를 거들었던 모양입니다. 그게 탈을 내고 말았습니다. 역린(逆鱗)을 건드린 거지요. 그 순간 “당신 친미파구먼? 나가 있어?”라는 고함 소리가 누군가의 입에서 곧이어 터져 나왔다는 겁니다. 이 소문은 공무원들의 등짝을 오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이것이 이 정권 내내 상영(上映)될 ‘한ㆍ미 괴담(怪談)’의 예고편이리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 괴담은 청와대와 외교부 안에서 터져 나온 자주파(自主派)와 동맹파(同盟派)의 갈등과 밀고(密告) 사건, “미국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었을 것”, “미국 국민보다 미국을 더 사랑하는 한국인이 문제”라던 대통령의 좌충우돌, “미국에서 공부하고 영어 깨나 한다는 사람”을 들먹이던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새끼를 치며 이어져 결국 “우리 외교부에는 친미파가 없습니다”라는 당시 외교부장관의 기상천외(奇想天外)한 고백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대영제국의 ‘영광스런 고립’을 흉내 내 미국과 중국 사이의 세력균형유지국이 되겠다며 호언장담하고 내걸었던 ‘동북아 균형자’ 이론은 필름조차 돌려보지도 못한 채 간판을 내려야 했습니다. 물론 흥행은 ‘상처뿐인 고립’이란 대 참패로 끝났지요.

    제가 어느 나라 대사로부터 “중국 요인의 방문을 받은 당선자 쪽에서 ‘한국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방문국은 미국으로 정해져 있다시피 한데, 중국을 택할 날도 어서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는데 정말이냐”는 질문을 받고 우물우물댔던 것도 그 무렵 인수위 시절이었습니다. 진위(眞僞)가 여태 궁금하네요. 

    사실 노무현 정권은 반미(反美)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파병, 주한 미군의 주둔 비용 부담 확대, 주한미군 감축(減縮)동의, 한ㆍ미 FTA체결 등 미국이 바라는 대로 모든 것을 내주었습니다. 문제라면 오히려 내준 만큼 받아내지 못했다는 데 있는 거지요. 실리(?利)를 내주면서 대신 정권 지지층의 일부인 반미자주(反美自主) 세력의 입맛을 돋워 줄 반미 언동(言動)의 자유를 택한 셈입니다.

    계절이 바뀌어 지금 모두가 한입으로 한?미 동맹의 복원ㆍ강화ㆍ확대를 외치고 있습니다. 지당(至當)한 일이지요. 그러나 오늘의 한국은 한?미관계만 제대로 굴러가면 만사형통(萬事亨通)하던 옛날의 그 나라가 아닙니다.

    미국에도 클린턴에서 부시로 정권이 바뀌자 ‘클린턴이 하던 것과 반대로만 하면 된다(Anything But Clinton)’는 소위 ‘ABC’가 유행했답니다. 지금의 한·미동맹 강화론이 ‘노무현이 하던 것과 반대로만 하면 된다’는 한국판 ‘ABC’여서는 곤란합니다. 말을 가리는 지혜와 균형감각이 절실한 때입니다.

    궁금해 하실까 봐, ‘당신 친미파구먼’하는 고함과 함께 튕겨나갔던 그분도 열심히 노력해 그 얼마 후 정상궤도로 복귀했다는 후일담(後日談)도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