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과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선후배 관계가 심 의원 부인 권은정씨가 통합신당 박영선 의원에게 쓴 편지로 논란을 빚고있다. 심 의원과 정 후보, 그리고 박 의원은 모두 MBC기자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한 선후배 관계다.    

    심 의원은 22일 국회 브리핑에서 정 후보가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라는 박 의원의 표현에 대해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면서, 부인 권씨가 박 의원에게 쓴 편지를 공개했다.

    권씨는 '박영선 의원님, 대권에 눈멀어 거짓말하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편지에서 "심 의원의 둘째누나가 본인과 30년 지기 절친한 세브란스 심장전문의 정모 박사에게 전화해서 세브란스로 이송되었던 것"이라면서 "그런데도 생명의 은인이냐. 대선후보의 행적을 거짓으로 미화해도 되느냐"고 따졌다.  

    권씨는 박 의원이 '선배'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서도 "'절친한' 직장 선후배라구요? 옛 직장의 선배로서 '절친'하다는 정동영 의원은 왜 후보 심재철 의원의 낙선운동을 했습니까? 2004년 총선 당시 정 의원이 심 의원의 지역구 안양 동안을의 핵심 지역인 호계시장을 돌며 '심 의원을 낙선시키고 자당 후보를 당선시켜달라'고 외치고 다니며 시장터를 누볐다"고 주장했다.

    권씨는 이어 "박 의원 역시 심 의원의 지역구에서 낙선 운동을 했다"면서 "직장 선후배의 의리를 따지며 분개할 자격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당시의 박 의원을 보고 "정치의 비정함에 치를 떨었다"고도 했다. 심 의원도 이날 브리핑에서 "정 후보는 제 생명의 은인도 아니고 절친했던 관계는 전혀 아니다"며 "그냥 알았던 선후배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 후보측 김현미 대변인은 "정모 박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치의였고, 정 후보와는 전주고 선후배 사이"라면서 "당시 정 후보가 야간 당직을 서고 있었고, 회사에 (심 의원에 대한) 연락이 와서 평소 알고 지내던 정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소개해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 의원) 본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좋은 일 하고나서 억지로 그게 맞다고 주장하기도 좀 그렇다. 심 의원이 그냥 그렇게 말하도록 내버려두라"고 말했다.

    한편, 심 의원은 18일 국회 문광위의 방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 후보가 12년 전 MBC에 재직할 당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구조반원들의 구조활동을 방해했다"면서 "정 후보가 당시 취재를 이유로 구조반원들의 자리 양보 요구를 거절했다. 기자가 사고 현장을 취재할 때 구조활동을 방해하면서까지 보도하는 것이 언론인의 바람직한 자세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90년대 초, 심 의원이 기자 시절 교통사고가 나 크게 다쳤을 때 모 병원에서 가망이 없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하는 것을, 정 후보가 급히 잘 아는 심장전문의를 수소문하고 신촌 세브란스로 이송시켜 목숨을 구했다. 선배이자 생명의 은인인데 어찌 그런 야박하고 비열한 네거티브를 펼 수 있나, 배은망덕한 짓"이라고 비난했었다.

    <<다음은 심재철 의원 부인 권은정씨가 박영선 의원에게 23일 쓴 편지 전문>>


    ‘한 생명의 존엄성은 전 우주와 맞바꿀 수 없다’

    1993년 6월 30일 남편의 교통사고 이후 우리 가족에게 가장 절절이 와 닿는 말입니다.
    새벽 출근길 중앙선을 넘어오는 졸음운전자가 모는 트럭과 정면충돌해 병원에 실려 왔을 때  남편은 이미 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혈압이 30이하여서 몸에 피가 돌지 않았으며 심장막이 13센티가 찢어져 심장이 밖으로 나와 있었고 머리뼈가 10센티 금이 가 골을 싸고 있는 골막에 유리 파편이 촘촘히 박혀있었고 소장 비장, 대장 온 몸의 장기가 너덜너덜해 질 정도로 다쳐 온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저 너머 세상으로 한 발이 가 있던 남편을 되돌아오게 한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고 수많은 은인들 덕분이었습니다.

    평생 감사하단 말로 다 못 갚을 연세 세브란스 병원의 정** 박사님, 정** 박사님의 은혜. 수술을 성공리에 마무리해주신 8개과 의료진. 피가 돌지 않는 환자를 급하게 수혈해 혈압을 올려주시고 이송 중 피를 챙겨주신 한강성심병원 의료진.  그리고 사고 1시간 후 새벽 6시부터 모여들어 병원 응급실을 지켜주신 MBC 동료기자님들. 강** 보도이사님을 비롯한 방송국 임원진들.  수술 도중 성인남자 5~6명에 해당하는 피 20,000cc를 급히 수혈해야 했을 때 기꺼이 피를 나눠주신 분들.  “피가 부족하다”고 MBC 사내 방송을 해주신 최** 앵커님.  근무시간 도중 병원으로 달려와 수혈해주신 70여분의 MBC 선후배님들.  학기말시험 중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수혈에 응해준 20~30명의 연세대학교 학생들,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를 지키던 전경들.  사고 당일 고향 광주에서 올라오신 40여분의 친구 분들.  수술 후 일주일동안 번갈아가며 밤샘해주신 친구 분들 방송국 국제부 동료들. 정** 차장님, 홍** 기자님, 황** 기자님. 김** 기자님, 치료비에 보태 쓰라고 보도국 입사 동기들이 모은 돈을 전해주시며 위로해주신 노** 기자님. 혈소판을 기꺼이 수혈해주신 황** 기자님, 전** 기자님. 수술 후 치사율 80%의 패혈증 고비를 잘 넘기게 해주신 감염내과 의료진. 그리고 의식불명의 환자를 밤낮 간호해주신 중환자실 간호사님들.  직접적인 의술의 도움뿐 아니라 마음으로서 큰 빚을 진 분들이 많습니다.  (정치인의 이름은 생략하겠습니다.) 홍은주 기자님의 말씀대로 무수한 사람들의 기원이 하나하나 실타래처럼 모아져 그 기도가 하늘에 받아들여져 기적이 일어났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평생 마음의 빚으로 살아갈 이들 은인들의 이름은 우리 인생에 굵게 각인이 되어서 화인처럼 남았습니다.  절대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될 이 은인들이 이름이 이렇게 공개된 것 자체가 참으로 그 분께 죄송하단 생각뿐입니다.  생명의 은인, 이 존귀한 의미가 정치공방 속에 아무렇게나 내 팽겨졌기 때문입니다.

    정동영후보 캠프 대변인 김현미의원의 회견 내용과 후보 비서실장이자 MBC동료인 박영선의원님의 인터뷰 내용을 듣고 저는 귀와 눈을 의심했습니다.  극단적인 정치 공세이며 거짓입니다.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그렇게 온 마음 정성을 쏟아주신 수많은 은인들을 폄하시키는 참으로 비인간적인 정치공세란 생각뿐입니다.  그 기사를 접하고 황당한 느낌이 드실 수많은 은인들을 위해서라도 저는 그 진실을 밝혀야합니다.

    제가 어찌 그 날 일 분 일 초를 잊겠습니까?  사고 당일 아침 8시경 한강성심병원 응급실 앞에 계신 십 여분의 동료 기자들 틈에서 걱정해주시던 정 후보님 모습도 분명히 기억합니다.  병원 바닥에 무릎 끓고 있다가 의사들의 말을 엿듣고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가족들에게 전한 다음의 일이었습니다. 병원 측도 수술 도중 사망할 가능성이 높고 또 이동한다 할지라도 이동도중 사망할 확률도 높다며 결단을 내리라 했었죠.  그때 가족회의 끝에 병원을 옮기기로 하고 심의원의 둘째 누나와 절친한 연세 세브란스 병원의 정** 박사님(미혼시절 심재철 의원에게 중매도 서시기도 했던)께 연락하기로 했었죠.

    시누이가 공중전화 앞에서 전화번호를 찾았으나 수첩을 집에 두고 나온 것을 깨닫고 당황하던 차에 손이 떨려 자꾸만 동전을 떨어뜨리자 마침 그 근처에 있던 정동영후보가 어디에 전화하시냐고 물었었다고 합니다.
    “연세 세브란스”.  그 때 정후보가 114로 전화해서 연세 세브란스 대표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걸어주며 어느 분을 찾느냐고 하셨습니다.
    “심장내과 정** 박사님이요.  정동영기자도 전주고 나오셨죠.  정** 박사님이 정동영 기자 전주고 선배 되실거 에요. (저희 시누이는 같은 전라도인 정동영후보가 전주고 나온 것을 알고 계셨다고 합니다.  정 박사님이 김대중 전 대통령 주치의가 되신 것은 5년이 지난 후의 일이죠.)
    정 후보 왈 “아, 예”
    그 때 정후보가 전화 교환원에게 심장내과의 정** 박사님실로 돌려달라고 말하고 통화가 연결되었습니다. 정 박사님이 전화를 받자, 정후보는 “저 MBC 정동영기자인데요. 저희 방송국 심재철 기자가 교통사고가 나 상황이 위중합니다. 심기자 누님 바꿔드리겠습니다.” 이후 심의원 누님은 가족 간에도 절친한 정 박사님께 현재 상황을 말하고 연세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 정 후보님을 다시 뵌 것은 사고 5개월 후 초겨울 병문안 오셨을 때였습니다.  정 후보님께서 사모님과 함께 병문안 오셔서 참으로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비록 10여 분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모님의 따뜻한 위로가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았습니다.
    그 뒤 정 후보님이 2004년 총선 당시 심재철 의원 지역구에 오셔서 심 의원 낙선운동하신 것 다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투표 6일전 또 다시 박영선 의원을 보내 심후보의 낙선 운동을 하게 한 점 등은 의리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정치판을 실감했다는 정도로만 말하겠습니다.

    하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후보님께서 심재철의원의 생명의 은인이고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하셨는데 제가 모르는 ‘후보님께서 제 남편을 위해 애써주신 일’이 있으신지 묻고 싶습니다.  당황한 마음에 손이 떨려 공중전화를 정확히 돌리지 못하는 심의원의 누나를 위해 114로 전화번호를 찾아주신 것, 정 박사님 실을 찾아 심 의원 누나에게 연결해 주신 것이 본인이 심재철의원의 생명의 은인으로 공개해야 할 만큼 대단한 상황이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터럭만한 기록과 추억일지라도 우리 가족 일생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었을 남편의 교통사고에 관련된 모든 것을 기록하고 간직해온 제가 아직 모르는 정동영 후보님께서 베풀어주신 또 다른 무엇이 있으시면 지금이라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양 손으로, 온 마음으로 도움을 주신 수많은 은인들.  지금의 ‘심재철 생명의 은인’ 공방에서 가장 당황스럽고 인간에 대한 회의가 드실 은인들에 대한 도리이고 마땅한 인간에 대한 예의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