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김두우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개성이 있고 집단에는 구성원이 함께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 그런 개성과 가치가 사라지면 개인도 집단도 존재의 이유가 없어진다. 보수와 진보도 마찬가지다. 어느 사회에서나 보수는 현실을, 진보는 이상을 중시한다. 만약 현 시점의 한국사회에서 보수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외면한다면 보수라 할 수 있을까? 진보가 복지와 도덕성을 외면한다면 진보라 할 수 있을까? 추구하는 핵심 가치를 상실하는 순간 보수는 더 이상 보수가 아니며 진보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보수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은 한나라당, 진보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은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다. 물론 보다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민노당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먹고사는 현실의 문제가 중요했던 시절에는 공화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이 집권했다. 군(軍)의 힘이란 물리력이 동원되기는 했지만, 그 시절 국민의 욕구와 희망을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었기에 정권을 지탱할 수 있었다. 그들은 경제성장이란 성과를 이룩했지만 민주화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고, 또 오랜 집권으로 부패했다. 그 결과 정권을 잃었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그래서 등장했다. ‘가진 자끼리 다 해먹는’ 꼴이 보기 싫어서 국민은 정권 교체를 선택했다. 산업화 세력의 쓰레기를 청소하고 새 시대를 맞아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진보적 가치가 도입돼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이기도 했다. 그 세월이 10년이다. 산업화 시대의 쓰레기가 아직 충분히 청소되지 못한 것인가, 이제는 민주화 시대의 쓰레기를 청소할 때가 된 것인가. 이번 대선의 결과는 국민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선 국면을 맞아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 등 대부분의 정당이 약속이라도 한 듯 중도를 표방하고 있다. 냉소적으로 보자면 표를 더 받기 위한 ‘수작’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긍정적으로 보자면 우리 사회가 발전해가고 있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칼로 무 자르듯 보수니 진보니 나누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와 진보의 가치가 사라진 건 아니다. 보수는 중도 보수를, 진보는 중도 진보로 좌표를 조금 옮겼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범여권은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망가뜨리고 있다. 진보가 이상을 추구하지 않고 부도덕하다면 무엇으로 보수와 차별화할 것인가. 기껏 대북 정책 하나로 차별성을 내세우려 하는가.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드러내고 있는 모습은 참담하다. 신청한 적도 없는 국민의 이름을 도둑질해 선거인단 신청을 하고, 선거인단을 차로 실어 나르고 있다. ‘버스떼기’ ‘박스떼기’ ‘폰떼기’에다 ‘콜센터 동원’까지 온갖 수단이 동원되고 있다. 여기에는 당연히 돈이 개입된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수십억원이 들어갔을 것임은 쉽게 추산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두운 정치자금을 많이 확보한 이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당 지도부는 조사에 나서서 기껏 발표한 것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래서는 민주화 세력도, 진보 세력도 한나라당보다 비교우위를 내세울 만한 게 없다. 불법과 비리가 난무하는 상황에서는 그 경선 결과에 누구도 승복할 수 없다. 앞서 있는 정동영 후보의 문제만이 아니다. 손학규·이해찬 후보도 결코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 노무현 대통령처럼 “정동영 후보의 10분의 1이 넘으면 사퇴하겠다”고 할 것인가.

    정치에는 어둡고 음습한 대목이 있게 마련이다. 신당 지도부의 말처럼 흥행을 위해서는 약간의 잘못은 눈감아 줄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정을 이해한다 해도 지금 신당의 경선은 도를 넘었다. 명분을 잃어버린 싸움은 약탈이요 살상일 뿐이다. 그런 경선은 국민의 외면을 자초한다. 도덕성마저 잃어버린 진보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