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순덕 편집국 부국장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왜 미국이 우리나라엔 안 쳐들어오나?”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2년 전 버마 특집에서 소개한 한 토막이다. 모든 나라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난한다고 해도 이 나라는 아니라고 했다. 군부 통치에 지친 승려나 택시 운전사나 학생들이 기자에게 소리 죽여 묻는다며 “여기선 외국의 침공이 차라리 희망”이라는 것이다.

    독재와 무기 거래의 끈끈한 관계

    버마의 민주화 시위와 유혈 진압은 남의 일 같지 않다. 20년 전, 그래도 우리는 찢어지게 가난하진 않았고 정권의 ‘6·29 항복 선언’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1988년 8월 8일 버마 시민들도 군정 종식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군부는 1000명의 사망자를 내며 진압하고도 3000명을 더 죽이고야 질서를 회복했다. 그 무자비한 군부가 1989년 식민 잔재를 없앤다는 구실로 바꾼 국호(國號)가 미얀마다. 그래서 이 나라의 민주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미얀마라는 국호를 인정하지 않는다.

    1948년 독립 때만 해도 동남아 최고 부국으로 꼽혔던 버마가 지금은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소득 세계 150위, ‘포린 폴리시’지가 정한 실패국가 지수 14위 신세다. 1962년 ‘버마식 사회주의’를 내걸고 집권해 정치 경제 사회 할 것 없이 도륙하는 이 나라 군부를 보면 쿠데타라고 다 같은 쿠데타가 아닌 모양이다. 1990년대 중반, 억압 통치를 유지하되 약간은 경제를 개방하는 ‘중국식 모델’을 시도했으나 신흥 부자들 충성심이 전 같지 않자 군부는 나라 문을 도로 닫았다. 독재자에게 중요한 건 무궁한 집권이지 국리민복이 아닌 것이다.

    버마보다 한 단계쯤 사는 게 낫고(국민소득 149위), 실패국가 지수에선 한층 더 나쁜(13위) 곳이 북한이다. 둘 다 ‘폭정의 거점’일 뿐 아니라 북한 무기와 기술이 버마에 팔리고, 북한의 땅굴 전문가가 버마의 비밀 벙커시설을 설치해 주는 끈끈한 사이다. 홍콩 아시아타임스에 따르면 버마 장군들은 “미국에 맞서는 북한을 존경한다”고 할 만큼 심리적으로 통한다.

    그래도 버마가 눈물 나게 부럽고 고마운 것은 동렬의 ‘야만 국가’로 꼽힌 북한에선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민주화 시위를 19년 만에 다시 일으켰기 때문이다. 버마는 1962년부터 겪어 온 군부독재를 더는 못 견디겠다고 일어섰지만 북한은 1948년부터 김일성 왕조가 지배한다. 어찌나 선군 정치와 주체 사상교육에 철저한지 버마 시위에 앞장섰던 승려 집단도 없고, 민주화의 상징 아웅산 수치 같은 인물도 나올 수 없다. 같은 민족이 이룬 경제규모 10위의 나라 대한민국이 옆에 있지만 과연 북한 주민 편인지, 김정일 정권 편인지는 말하기도 어려워졌다.

    국제 사회는 이번엔 버마의 민주화가 중국에 달렸다며 중국을 주시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우방 중국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공을 위해서라도 버마 군부에 지렛대를 움직인다면 5400만 버마 국민은 분명 소원하던 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세금 주고 김정일 정권만 살리면

    우리가 북한에 행사할 수 있는 지렛대는 중국에 비할 바 아니다. 제 백성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인 실패 정권을 지금껏 유지시켜 준 것이 한국이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보도하고 있다. 그나마 중국은 ‘장사가 안 되면 문 닫는다’는 시장경제를 가르친 반면 한국 정부는 북한에 변화가 있든 없든 끊임없이 퍼주는 사회주의자처럼 군다는 지적이다.

    내가 내는 세금이 굶주려 앙상해진 북한 주민들을 배불리고, 인간답게 살게 해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기쁘게 바칠 수 있다. 그러나 버마 군부 뺨치게 잘살면서 핵까지 개발한 김정일 세습 왕조의 영구 집권을 위해서라면 한 푼도 아깝다. 세계가 버마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사이,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는 정부가 어떤 목적으로 북한까지 행차해 평화 아닌 평화를 사오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