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수해 문제로 연기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10월 2일부터 4까지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다. 남측과 북측은 평화, 공동번영, 통일 문제를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의제로 설정하였다. 평화 문제의 경우 북한 핵문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군사적 신뢰 구축, 군축 문제 등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공동번영 문제의 경우 북한 핵문제와 연계한 경제 지원, 사회간접자본(SOC) 지원,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 제조업 분야의 협력 문제 등이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통일 문제의 경우 남북 연방제와 관련한 6.15 남북공동선언 제2항이 중요하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2006년 6월에 열렸던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네 시간에 걸친 공식 회동 중에서 한 시간 이상을 통일 문제에 할애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2007. 8. 27, 중앙일보)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통일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노무현 정부가 이제까지 천명해왔던 일련의 발언과 정책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남북 연방제에 관한 논의가 심도 있게 진행될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 제2항에서는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공통성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북한식 연방제는 '하나의 민족국가 안에 서로 다른 두 개의 정부와 두 개의 제도가 있을 수 있다'는 1국가 2정부 2체제를 전제로 한다. 북한은 이의 실현을 위한 단계적인 방안으로 '잠정적으로 연방정부의 지역적 자치정부에 외교와 군사권을 각각 보유케 함으로써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되 향후 연방정부의 기능을 높여 감으로써 연방제 통일을 점차적으로 완성하는 문제도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2006. 4, 월간조선)

    한편 북한은 연방제 통일 방안을 제시하면서 남한의 정권교체,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공산당 활동 허용 등을 분명한 전제조건으로 내세웠고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에도 남한의 정권교체 부분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지금까지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의 동질성 회복, 남북한 신뢰 구축, 북한 핵문제 해결 등을 위한 실질적 조치 없이 통일 문제를 포퓰리즘적 평화체제나 연방제 차원에서 해법을 찾을 경우 대단히 위험한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통일은 커녕 우리가 먼저 체제 위기의 미궁에 빠져들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 대통령의 연합제나 노무현 정부가 추구하는 평화체제는 모두 정치적 이상(理想)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 최악의 경우 한반도에서도 남북예멘식 통일과 내전이 반복되는 상황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남북예멘의 통일 과정은 협상에 의한 통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허구에 찬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남북예멘의 통일은 협상에 의한 통일, 분리 독립, 무력에 의한 흡수통일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겪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남북예멘은 1962년 오스만 터키로부터 독립한 북예멘이 서방권에 가담하였고 196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남예멘이 공산권에 가담함으로써 분단되었다. 두 나라는 세 번의 국경충돌과 열 번의 정상회담을 포함하는 세 번의 통일협상을 통해 1990년 5월 '합의(合意)'에 의한 통일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 합의는 권력의 안배와 같은 정치적 통합에만 초점이 맞추어졌을 뿐 경제, 사회, 문화적 통합은 도외시되었다. 결국 1994년 5월 남예멘이 분리독립을 선언함으로써 1994년 7월 내전이 발생하였고 무력이 우세한 북예멘이 남예멘을 흡수한 것이다.

    남북예멘의 합의에 의한 통일은 양측 사이에 현저한 국력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신뢰 구축과 같은 통일을 위한 실질적 조치들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정치적 협상에 의해 기계적으로 이루어진 결과로서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첫째 통일은 정상회담과 같은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 국방위원장은 "김 대통령께서 어려운 걸음을 하셨으니 연방제 통일 방안을 7000만 민족에게 선물로 주자"고 김 전 대통령을 집요하게 설득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2007. 8. 27, 중앙일보) 노무현 대통령도 김 국방위원장의 말에 설득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둘째 통일 협상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양측간에 신뢰 구축을 통한 정신적 공감대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적 합의에 의한 남북예멘의 통일은 이념 통합이나 민족 통합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협상만으로 이루어진 결과 또 다른 분열을 초래했던 것이다. 즉 남북예멘 사이에 내재해 있던 강한 이념적 적대 감정과 정치적 대립 의식이 적절히 융합되지 않은 결과 재분열과 무력 충돌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북한 사이에도 어설픈 평화체제나 연방제 등과 같은 정치적 통일을 기계적으로 추진한다면 또 다른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 현격한 국력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의 수평적 통일은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정치 권력의 무한 투쟁적 본질을 해결하지 못한 불완전한 통일로서 언젠가는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개연성을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 남예멘은 북예멘이 인구수에 의한 '수(數)의 횡포'를 자행하여 정치 권력과 국가 재원 면에서 싹쓸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북예멘은 모든 조치들이 1인 1표제라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결정되고 있음에도 남예멘이 북예멘을 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연 인구수와 경제력 면에서 심각한 격차를 보이고 있는 남북한 사이에 대등한 통일이 이루어 질 수 있겠는가?

    따라서 한반도 통일도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사회주의체제인 북한이 자유민주주의체제인 남한을 흡수하기에는 모든 면에서 역부족일 뿐 아니라 세계의 흐름에도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 통일은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는 방식의 흡수통일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한반도 통일은 남한의 국력 증강을 통해 남북 사이의 신뢰 구축을 통한 이념 통합과 민족 통합을 거쳐 독일의 경우처럼 적절한 시기에 북한을 흡수하는 것이 정도(正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이 상징적 조치에 불과한 평화체제와 연방제에 합의한다면 이는 남한의 12월 대선을 의식한 현상 타파에 목적이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우 남한의 대선은 남북 문제에 휘말려 대선 판도에 심각한 영향을 가져오게 될 뿐 아니라 대선 자체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 강력한 남한은 취약한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어 궁극적으로 자유도 잃고 평화도 잃는 국면을 피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