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 15일 오피니언란에 실린 이 신문 선임기자인 성한용씨의 글 '2007 대선의 비극'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 경선 후보 합동연설회는 흥겹다. 연설이 시작되기 전부터 후끈 달아오른다. 지지자들은 대중가요 반주에 박수로 장단을 맞추며 춤을 춘다. 후보들이 나타나면 연설회장은 ‘이명박 이명박!’ ‘박근혜 박근혜!’ 연호에 휩싸인다. ‘원희룡 원희룡!’ ‘홍준표 홍준표!’는 좀 작게 들린다. 

    이명박 후보는 66살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뒤풀이를 한다. 부흥회의 목사 같기도 하고, 경기장의 응원단장 같기도 하다. 주먹으로 하늘을 마구 찌르며 쉬지 않고 소리를 지른다. 두 팔로 머리 위에 하트 모양을 그린다.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다.

    박근혜 후보는 화사한 웃음을 날리며 손을 흔든다. 대조적이다. 하지만 박 후보는 연설 내용에서 ‘오버’를 한다. 아버지가 경제를 살릴 때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자기도 경제를 살릴 수 있단다. 홍준표 후보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 때 몇 살이었냐”고 따지자, 청중석에서 웃음이 터진다. 원희룡 후보에게는 열성 팬들이 따라 다닌다. 그들의 젊음은 연설회장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

    그렇다. 한나라당 연설회는 축제다. 12월 대선에서 이긴다는 자신감이 충만하다. 이명박 박근혜라는 두 절대 강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두 사람은 1997년과 2002년의 이회창 후보와 많이 다르다. 각각 별도의 지지계층을 확보하고 있어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다. 한나라당 지지율이 50%를 넘는 것은 두 유력 후보 덕분이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신이 날 만도 하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한나라당은 정권교체가 최고의 정치개혁이라고 한다. 그런가? ‘글쎄!’다.

    ‘이명박 대통령’의 시대정신은 ‘경제’일 것이다. 그는 신자유주의 물결을 타고 우리 앞에 홀연히 나타났다. 돈만 벌면 아무래도 좋다는 세태가 ‘이명박 신드롬’을 낳았다. 한나라당 ‘중심모임’ 의원들은 경선 뒤의 역할을 핑계로 그를 지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한 의원은 “그 정도일 줄 몰랐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천민자본주의가 판을 칠 것이라고 걱정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시대정신은 ‘선진국’일 것이다. 남경필 의원에게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묻자, “박근혜 후보가 되는 것은 도저히 못 보겠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해외 신문에 ‘한국의 지도자가 독재자의 딸’이라고 나오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한 것은 문제가 있지만, 말의 내용에는 일리가 있다.

    이명박도 아니고, 박근혜도 아니라면, 그럼 누군가? 없다. 그래서 답답하다. 한나라당에 재를 뿌리자는 심보가 아니다. 12월19일 선거일에 그래도 누군가를 찍어야 하는 유권자들이 딱해서 하는 말이다.

    한나라당만 그런 것이 아니다. 범여권에는 그만한 후보조차 없다. 남북 정상회담이 4자 정상회담으로, 북-미 평화협정으로 발전해도, 범여권에는 선거 지형이 다소 좋아질 뿐이다. 후보들의 ‘전투력’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후보들의 지지율이 한자릿수에 그치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후보들 개개인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범여권 후보들을 ‘대안’으로 생각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다음 대통령은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손에 달린 것 같다. 나흘 남았다. 검찰 발표가 변수가 되겠지만, 양쪽 지지자들의 결집력이 승부를 가르게 되어 있다. 투표소가 시·군·구에 하나씩밖에 없는 탓이다. 정책 비전? 그런 것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2007년 대선은 비극이다. 대한민국은 아직 정치 후진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