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이상 끌어 온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6일만 지나면 끝을 맺는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나,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나 참으로 길고 지루한 나날이었다. 투표일을 6일 남겨둔 시점에서도 승패를 쉽게 단정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한 일전이었다.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다. 흥행도 별로 안 되었으며, 더욱이 축제는 아니었다. 경선 기간 동안 당 지지율은 하락했고, 당과 후보들의 이미지는 대체로 훼손되었다. 한마디로 이번 경선은 손해 보는 장사였다.

    당은 전략적 판단의 부재를 여실히 입증하였다. 한두 사람의 유력 주자들만 가지고는 흥행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 당 안팎에 있었지만, 다크호스를 키우는 분위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빅 3’ 중의 한 명이 경선 도중에 탈당하는 진귀한 일까지 벌어졌다. 흥행의 실패와 완충 장치의 실종을 예고하는 중대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탈당자의 부도덕성에 대해서야 별개로 따지더라도 이런 사태를 초래한 당 지도자들의 실책이 너무 컸다. 그리고 당 지도부는 양대 후보 진영의 이전투구(泥田鬪狗)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다. 심판자의 역할을 잘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후보들의 상처는 더 컸다. 처음엔 열세 후보의 우세 후보에 대한 공격이 주를 이루었지만, 막판에는 우세 후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상호 공격으로 알게 모르게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사실관계를 떠나 국민들에게 치부(恥部)를 드러낸 것도 그렇고, 서로 입에 담지 못할 정도의 비방을 해대는 바람에 국민들의 기대감이 허물어진 것도 그렇다. 경륜과 비전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던 후보는 네거티브 공방에서 헤어나지 못함으로써 그런 국민적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으며, 따뜻함과 부드러움으로 국민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후보는 그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실망을 주었다.

    지난 1년에 걸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결과 남은 것은 상처투성이요, 잃은 것은 국민들의 신뢰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는 상처를 치유하고 국민들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일이다.

    당과 유력 후보들 각각의 상처 치유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아울러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차원에서 유력 후보들이 각각 상대 후보에 대하여 진심어린 사과와 위로를 보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승자가 모든 것을 포용해야 한다. 경선 과정에서의 모든 앙금을 역사의 대하(大河) 속으로 흘러 보내야 한다. 패자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인의 승리가 아닌 한나라당의 승리임을 함께 축하하면서 오는 12월의 승리를 기약해야 한다. 후보 혼자 대통령 선거를 치를 수 없고,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 사람 혼자 국정을 이끌고 갈 수가 없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겠다는 사람들이 소소한 감정에 치우쳐서야 되겠는가!

    국민들의 신뢰는 일차적으로 유력 후보들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를 통하여 회복될 수가 있다. 국민들이 정치 지도자들에게 우선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질 것 같은 비전이 아니라 양보와 관용에서 오는 아름다운 인간적인 모습이다. 그런 지도자가 적었기에, 그런 지도자에 대하여 열렬한 지지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시대와 국민의 요구에 한나라당이 얼마나 잘 부응하느냐에 따라 국민들의 신뢰도가 정해질 것이다. 대통령 선거는 대단히 복잡한 것 같아도 알고 보면 간단한 일이다. 방금 말한 대로 민심을 얻느냐가 핵심이다. 한나라당이 지난 두 차례의 대선에서 패배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5년 전 대선 패배 확정 직후 열린 기자 회견에서 이회창 후보는 “내가 진작부터 젊은 참모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오늘과 같은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대선을 주도한 사람들이 민심과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캠페인을 이끌어갔음을 알 만한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또 다시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가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때 그 사람들’이 이번 대선을 주도하지 않을까 해서 그렇다. 모든 사람들을 포용해야겠지만, 적어도 시대의 흐름에 둔감한 사람들이 배타적인 주도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점만은 지켜져야 한다.

    우리는 많은 것이 유동적이고 불투명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2007년 대통령 선거는 역대 어느 대선보다도 유동적이고 불투명하다. 이런 환경일수록 민심을 살피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들이 늘 경험하듯이 민심은 까다롭다. 어제의 민심이 오늘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 국민들의 다수는 ‘정권 교체’를 열망하고 있지만, 내일은 알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지금 한나라당에 필요한 것은 대오각성(大悟覺醒)과 환골탈태(換骨奪胎)이다. 지난 두 차례의 대선 패배의 교훈과 지난 4.25 재·보선에서 확인된 국민들의 경고에 대하여 가슴 깊이 크게 깨닫고, 한나라당을 국민 정당과 미래 정당으로 완전히 탈바꿈시키는 일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읍참마속(泣斬馬謖)도 필요하리라. 나아가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들 수 있는 역량과 비전을 제대로 보여주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럴 때만이 그 어떤 풍파 속에서도 ‘정권 교체’는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객원 칼럼니스트의 칼럼은 뉴데일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