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이 대선을 앞두고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라는 ‘메가톤급 변수’가 발생하자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기존 대선 판세를 ‘북풍(北風)’으로 흔들려는 정략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기에 정상회담 개최가 탐탁지 않지만 반대만을 고집하다가 ‘수구냉전세력’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는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한나라당의 복잡한 심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참석자들은 “시기, 장소 등이 적절치 못한 정략적인 회담”이라고 성토하면서도 남북정상회담 개최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남북정상회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통치 영역에 있는 것으로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권영세 최고위원)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한나라당은 전날 남북정상회담 개최 발표 직후 “시기, 장소, 절차가 모두 부적절한 남북정상회담에 반대한다”고 했다가 당 대선후보들이 ‘반대하지 않는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자 북핵 폐기를 전제로 한 ‘조건부 찬성’으로 한발 물러났다. 이날도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북핵 폐기, 국군포로.납북자 송환, 북한 인권 개선’ 등의 “실질적인 결과물을 가져와야 한다”고 압박하며 배수진을 쳤다. 

    한나라당은 이날 당내 남북정상회담 관련 TF팀(단장 이주영 정책위의장)을 구성하고 오후 국회원내대표실에서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국방위원회,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긴급 연석회의도 개최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또 당 지도부는 소속 의원들이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TV토론에 참석할 경우 미리 당 홍보기획본부에 연락해 입장을 조율하도록 단속했다.

    강재섭 대표는 “한나라당은 임기 말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국익을 훼손할 우려가 있어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면서도 “이미 남북 간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한 이상 화살은 활시위를 떠났다. 반대만 자꾸 이야기하는 것보다 반드시 이런 내용과 형식의 정상회담이 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주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강 대표는 그러나 “먼저 걱정스러운 것은 이번 정상회담이 시기나 장소 이런 것이 적절치 못하다. 의제도 미리 충분히 협의하지 않고 덜렁 만나기로 졸속 추진했다”며 “절차상으로도 안한다고 했다가 느닷없이 발표하고 야당에도 한 시간 전에 통보하는 등 문제가 많다”고 비판부터 했다. 그는 “어제 갑작스러운 남북정상회담 발표소식을 접하면서 다시 한 번 좌파정권의 장기집권 마각이 드러난 것 아닌가 하는 우려된다”며 “정권연장 음모를 분쇄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현 정권은 ‘Again 2002년’을 부르짖지만 현 정권에 등을 돌린 민심은 ‘Never 2002년’임을 명심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이어 “기왕에 하기로 합의한 이상 투명성과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국민이 납득할 만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둬야 한다”며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의제의 중점, 초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납북어부 몇 명만이라도 함께 (남한으로) 들어와야지 단순히 사진찍기용, 대선용이 돼서는 안된다”고도 했다. 그는 “낮은 단계 연방제, NLL, 국가보안법 폐지는 의제가 돼서는 안된다”며 “북핵이 완전하게 폐기되지 않은 가운데 섣부른 평화선언, 종전협정 체결을 허황되게 밀실에서 함부로 이뤄져서는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은 북핵 실험을 막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시기, 장소, 절차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남북정상회담 개최하기로 한 이상 이번 회담에서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선언, 종전협정은 북핵 폐기 속도를 봐가면서 차기 대통령이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추진해도 늦지 않는다”며 “현 대통령은 북핵 폐기를 매듭짓는 1단계 역할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며 차기 대통령이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완결 짓은 2단계 역할을 추진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정형근 최고위원은 “남북정상회담은 노 대통령이 올해 초 했던 개헌발의와 마찬가지로 정략적 요소가 다분하다”며 “김정일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여권대선주자들이 남북정상회담에 편승하고 있다. 난파선에서 우왕좌왕하다가 구조선을 만난 듯 환호작약하고 있다”며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여권의 정략적 기대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권영세 최고위원은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중립적으로 국정에 전념하기보다 고도의 정치적 행태를 보여 온 노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들의 자업자득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정상회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통치 행위 영역에 있는 것으로 2000년 임기 마지막 단계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사례에서 보듯이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북 간에 북핵 문제를 비롯해 산적한 문제가 있고 톱다운 형식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북한의 체제 특성상 남북정상회담이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았든지 간에 (개최돼) 실질적이고 진전된 결과물을 가져올 수 있다면 얼마든 환영해야할 부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