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2일자 오피니언면 '아침논단'에 이영훈 서울대 교수(경제사 전공)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을 직접 뽑을 국민의 권리가 15년 만에 회복된 1987년 대선 당시의 일이다. 그 선거를 쟁취한 민주화세력을 대표하는 양 김씨가 분열하였다. 대통령을 먼저 하겠다는 욕심을 억제하지 못해 각기 딴살림을 차려 따로 출마하였다. 결과는 두 사람 모두의 패배였다. 당시 30대의 순진하기만 했던 나는 인간들이 그렇게까지 분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사건은 한국의 역사와 사회의 특질에 관해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그 두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분열은 독재보다 추악하다.

    그 뒤 5년마다의 대선에서도 차마 볼 수 없는 광경이 매번 되풀이되었다. 10년 전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닮았다는 젊은 정치인이 당내 경선에서 패배한 뒤 탈당하여 본선에 출마하였다. 5년 전에는 정치노선을 달리하는 후보자 두 사람이 선거 한 달 전에 담합하였다. 나의 상식적 감각으로는 그것부터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이게도 선거 이틀 전에 별 중요한 이유도 없이 어느 일방이 그 담합을 깨고 말았다. 이런 정치 활극을 연출한 주인공들은 대통령을 한번 해 보는 것보다 약속과 규범을 지키는 것이 공인으로서 훨씬 더 중요하고 명예로운 일이라는 아주 간단한 진리조차 교육받지 못한 반(半)인격의 존재들이다.

    조선왕조 500년을 정치적으로 통합한 성리학에서 공(公)과 사(私)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살피면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공은 선하고 사는 악하다는 도덕적 공사관(公私觀)이다. 예컨대 아들이 아버지에게 효도를 함에 있어서 아들 된 도리로 성심을 다하면 공(公)이지만 아버지의 재산이나 보고 하면 사(私)이다. 다른 하나는 윗사람은 공이고 아랫사람은 사라는 수직적 공사관이다. 임금이 공이라면 신하는 사이며, 관찰사가 공이라면 수령은 사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봉공’(奉公)이란 장(章)이 있는데, 수령이 임금을 섬기고 관찰사를 모심에 성심을 다하라는 뜻이다. 이처럼 중세적인 공의 세계는 도덕적이고 수직적이지만, 근대적인 공의 세계에서는 도덕과 인륜이 잣대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적 도덕과 별개의 수준에서 성립하는 공존공영의 영역이다.

    오늘날 천둥벌거숭이와 같은 한국정치의 양태는 위와 같은 전통시대의 공사관이 20세기 내내 잠복해 있다가 민주화시대를 맞아 부활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을 성립케 할 정도이다. 예컨대 정치적으로 유력한 사람과 그를 추종하는 사적 집단이 자신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명분을 내걸고 공을 칭하는 일이 버릇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공을 칭하는 유력자들이 서로 대립하면 그들을 조정하고 타협으로 이끌 권위와 인격으로서 진정한 의미의 공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당이란 정치기구도 속을 들여다보면 몇 사람의 유력자가 빙공영사(憑公營私·공을 빙자해 사를 추구함)하는 허울에 불과하다.

    다시 5년만의 대선 정국이다. 올해는 또 무슨 못 볼 것을 보려나. 이미 나의 가설을 입증하는 몇 가지 사태가 벌어졌다. 집권 여당이 지지율이 낮다고 이를 해체한다고 한다. 당원들이 모여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워 5년 뒤를 기약할 생각은 않고, 당을 앞장 서 만든 사람들이 당을 해체하자고 소리치고 있다. 집권이 유력해 보이는 야당도 마찬가지이다. 벌써 한 사람의 후보자가 자신을 관찰사로까지 출세시켜 준 정당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면서 탈당하였다. 남은 두 사람의 유력 후보자는 당내 경선의 룰을 두고 아슬아슬하게 대립하더니 이제부터는 상대를 도덕적으로 검증할 순서라고 날을 세우고 있다. 10년 전과 5년 전에도 배반과 음모의 명분으로 도덕이 거론되었다. 또 그 도덕 타령인가. 모두 다 공을 빙자하여 사를 추구하는 구실에 불과하다. 도덕으로 싸우는 순간, 분열의 운명은 피할 수 없다. 이제는 진정한 공적 영역에서 비전과 정책으로 능력을 검증 받아야 할 때다. 한국정치에 도덕적 공사관이 지배하는 중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