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1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김종혁 사회부문 부에디터가 쓴 '포털이 부럽다 그리고 무섭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신문사에서 20년이나 잘 지내놓고 뭔 소리냐"고 해도 별 수 없다. 솔직히 나는 네이버(naver)·다음(daum) 같은 인터넷 포털 업체들이 부럽다.

    신문에 실리는 뉴스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청와대와 정부, 각 정당과 사회단체, 기업체, 검찰과 경찰 등을 출입하는 기자 수백 명이 기를 쓰고 취재한 내용이다. 물론 해외 특파원들도 놀고 있는 게 아니다. 중앙일보의 경우 오전 11시 1차 편집회의 때 각 부장들이 '기사 거리'를 들고 온다. 하지만 편집회의는 결코 평화롭지 않다. 항상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오늘은 보유세가 헤드라인에 가야 한다" "무슨 소리, 아무래도 대통령 발언이 먼저지." 이런 식이다.

    가끔씩 얼굴도 붉히고 호통과 고성도 심심찮게 오간다. 그러면서 새 취재 지시가 내려가고, 부장들은 기사를 손질하고, 편집자는 제목을 잡느라 낑낑대다 보면 하루가 후딱 간다. 신파조로 들리겠지만 독자들이 아침에 읽는 기사는 기자들의 피와 땀인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고생해 만들어낸 기사가 인터넷 포털 업체들에 헐값으로 팔려나간다.

    "포털 업체만 재미보는 구조가 형성된 건 언론사 간 과잉 경쟁의 업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맞는 얘기다. 그래서 더 가슴 아프다. 눈물 머금고 독점 대기업에 납품하는 영세기업의 설움을 절감한다.

    최근까지도 인터넷 포털들은 제공받은 기사 제목까지 맘대로 바꿨다. 더 야하고 자극적으로 만들어 클릭수를 올리고 돈을 벌었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 들어 신문들은 된서리를 맞았다. 기자들은 대통령으로부터도 조롱당했고, 신문법에 목이 졸렸다. 중앙일보와 동아·조선은 시장점유율이 60%를 넘는다고 온갖 규제 대상이 됐다. 그러나 시장지배율이 80~90%가 넘는 포털 업체들은 희희낙락했다. 정권 입장에선 아마도 포털을 통해 신문을 견제하는 게 즐거웠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은 '포털 왕국'이 됐다.

    미안하지만 포털업계 일등인 네이버의 사례를 들어보자. 아침에 컴퓨터를 켜면 네이버가 시작 페이지로 나온다. 메일 주소도 네이버고,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네이버 뉴스에서 모든 소식을 듣고,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 순위'를 보면서 남들의 관심사를 확인한다. 숙제도 공부도 네이버로 한다. 잠자기 전까지 네이버다.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찌보면 정말 편한 세상이 됐다. 하지만 웬일인지 자꾸 조지 오웰의 '1984년'이 생각난다.

    이제 나는 포털이 무섭다. 특히 올해 말의 대통령 선거 생각을 하면 더 소름끼친다. 퀴즈를 내보자. ①포털은 신문에 나온 기사만 전달할 뿐이고 정치적으로 중립이다 ②포털은 접속자가 많으니까 제대로 된 여론을 반영한다 ③정보 천국인 포털을 보면 깊이 있는 지식을 얻는다 ④포털은 공정하다.

    이론이 많겠지만 내 경험으로 보자면 대답은 모두 '아니오'다. 그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①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때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는 A포털에,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는 B포털에 광고를 집중했다. 왜 그랬을까. ②전체 이용자의 1%가 안 되는 사람이 포털 댓글의 50% 이상을 단다. 이게 제대로 된 여론인가. ③포털 예찬론자인 한 신방과 교수는 지난해 한 달 내내 신문 대신 포털만 읽는 실험을 하다 포기했다. "진짜로 고민해야 할 중요한 이슈가 뭔지 모르겠더라"는 이유였다. ④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지난해 지방자치단체 선거 때 포털에서 특정 후보 이름을 검색하면 부정적인 내용만 나오더라"며 "대선에서도 이런 식의 여론 조작이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독점은 언제나 소비자에게 피해가 된다. 정보든 상품이든 그렇다. 올 대선 때 이토록 전지전능한 포털을 이용해 어떤 여론조작이 이뤄질지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말인데, 이젠 책임을 생각하라. '공룡 포털'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가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