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 '데스크 시각'란에 이 신문 최범 편집국 부국장이 쓴 '개헌 칼잡이들의 퇴진'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참 이상한 정부라는 생각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다. 얼마 전까지 범정부 차원의 개헌 지원기구 구성을 힘주어 지시하며 ‘개헌 총대’를 메던 한명숙 총리는 정작 개헌안이 발의되기도 전에 자리를 내놓는다. 개헌이 국가 발전 전략이라며 ‘개헌의 나팔수’역할을 서슴지 않던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도 슬그머니 청와대를 떠날 채비를 한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 할 ‘언필칭’ 핵심(?) 칼잡이들이 중도에 칼을 버리고 만다. 아주 버리진 않더라도 슬그머니 내려놓고 나가는 모양새를 보인다. 왜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번 총리와 비서실장 교체는 노무현 정권 스스로 대선정국으로 한발짝 더 깊이 들어가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개헌은 대선정국의 국면 전환용이었으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이 칼을 놓는다고 해서 별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한 총리는 떠나올 때보다 초라해진 당으로 다시 돌아가서, 이 실장은 정부 외곽에서 개헌 등 이 정부의 마지막 1년을 위한 소임을 다할 것이라는 말로 퇴임의 변(辨)을 대신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내는 명분일 뿐, 내부적으로는 대선가도의 역할 분담에 대한 모종의 합의가 없었을 리 만무하다.

    우선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성격으로 남을 잘 포용한다는 평가를 받는 한 총리는 당으로 돌아가면 일정 부분 당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민생분야 등에서 총리의 역할은 다 못했다 해도 당에서 정치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겠다는 의지는 강할 것이다. 잠재적 대선주자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분이기에, 자신의 처신에 따라 확실한 정치적 자리매김을 할 수도 있으리라는 욕심도 버리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주변에서도 한 총리의 원대한 꿈을 계속 부채질할 것은 뻔한 이치다. 한 총리의 가세는 여당권내에 ‘대선 흥행’을 어느 정도 점화시키는 부수입도 가져올 수 있다.

    왠지 모사(謀士) 분위기를 내는 이 실장은 청와대 내의 버거운 자리에서 벗어나 좀더 자유롭게 일을 꾸밀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해볼 수 있다. 이 실장은 이 정권 창출의 본류 라인에 속하는 인물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초기 청와대 비서관으로 시작해 비서실장에 올랐으니 정권 최대의 수혜자 중 한 사람이기는 해도 ‘개국공신’이 될 수는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실장은 청와대를 벗어나 ‘외곽을 때리며’ 차기 정권 창출을 위한 ‘킹메이킹’에 일조를 할 것으로 보인다.

    애당초 이 정부가 개헌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는 것은 한 총리와 이 실장 두 사람이 앞으로 보일 행보에서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여론의 절대적 외면 속에서도 ‘앞으로 여론은 우리 편’이라는 식으로 개헌에 대해 억지 춘향격 충정으로 일관해온 두 사람의 퇴진 자체가 이미 개헌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아니, 두 사람은 처음부터 개헌의 핵심 칼잡이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 정권을 창출했던 일부 386세력이 야당에 압도적으로 밀리는 대선 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해 개헌안을 내놓고 이들을 앞세웠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기 때문이다.

    한 총리와 이 실장의 퇴진이 기정사실화된 바로 그날, ‘노사모’회장을 지낸 명계남씨는 “참여정부는 실패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노무현 학파의 좌장격인 그의 말은 무언가 시작을 알리는 선언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게 무엇일까. 카를 마르크스식으로 얘기하면 “전국의 노사모여, 단결하라”쯤 되지 않을까. 물불을 가리지 않는 본격적인 대권 투쟁이 이제 시작되려나 보다. 다시 추워진 날씨에 서민들은 옷깃을 더욱 여밀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