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탄핵사태로 야기한 17대 총선의 대약진으로 얻은 천군만마(千軍萬馬)들이 지리멸렬(支離滅裂)하여 적수공권(赤手空拳)이 되었다. 병졸 없는 장수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지지도 10%의 초라한 성적표는 탈당론과 신당창당론을 잠재우지 못하고 여권의 핵분열 일보직전까지 몰아가고 있다.

    손자병법과 육도삼략(六韜三略)과 같은 병서와 삼국지나 초한지와 같은 영웅들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에는 필기단마(匹馬單騎)로 적진을 누비는 용장(勇將)들의 명성이 있다. 그러나 현실 정치의 세계에서 대통령이 표현한 “권한과 의무”만 믿고 무모한 개헌발의를 한다면 이는 필부지용(匹夫之勇)의 혈기만 믿고 설치다 일패도지(一敗塗地)하는 우를 범하고 말 것이다.

    노 대통령은 10일 “시간적으로 지금도 개헌을 두 번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다. 발의하고 3개월이면 되고, 발의 전 준비기간을 합치면 4개월이면 된다.”면서 “1987년 예를 비교하면 두 번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다분히 아전인수(我田引水)에 불과하다. 87년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권위주의 체제 종식을 갈망하는 국민의 여망이 6.10항쟁과 6.29민주화선언으로 마무리되어 직선제 개헌에 대한 열망이 높았던 시절이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개헌협상에 돌입, ‘8인 정치회담’을 구성하고 7월 30일 첫 회의를 개최하고 한 달 만인 8월 31일 여야 개헌합의에 성공했다. 합의된 개헌안은 10월 12일 국회에서 254명의 찬성으로 의결됐고, 국민투표(10월 27일)에서 93.1%의 찬성으로 개헌안이 확정됐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2007년의 개헌정국은 상황이 다르다. 먼저 정당성의 문제이다. 임기가 일년 밖에 남지 않은 지지율 10%의 헌정사상 초유의 국회탄핵을 받은 대통령의 발의가 설득력이 있는가이다. 다음은 실현가능성의 문제이다. 개헌 저지선인 국회의석 3분의 1을 넘는 야당이 반대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이다. 그리고 개헌논란의 부작용 문제이다. 영토·경제조항 등의 개정논란은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국론을 분열시킬 것이다.

    노대통령은 “개헌 반대가 오히려 정략적‘이라고 야당을 비판하면서 ”개헌은 어느 누구에게도, 어느 당에도 이익이 되고 손해가 되는 일이 없다“며 정략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인식에는 오류가 있다. 대통령의 권한행사는 국리민복을 위한 것이어야지 당리당략(黨利黨略)의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당보다 국가가 먼저인 것이다. 대선주자들간의 개헌셈법과 이해득실도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개헌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당하는 민생문제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개헌 공론화 작업을 본격화하고 야당이 이에 맞서 격렬한 장외 반대투쟁을 한다면 2007년 상반기는 개헌논의로 국론분열, 사회혼란, 정쟁과열 등의 평지풍파가 일어날 것이다.

    기획예산처 반장식 재정운용실장은 10일 정례브리핑에서 “개헌을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면 900-1000억원 소요된다는 것이 선과위의 추계”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 실장은 “부수비용을 어느 정도 범위로 정할지 등에 따라 실제 수치는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굳이 올해 경제 전망이 예년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상황을 빌지 않더라도 1000억원이 넘는 국민혈세를 낭비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헌 논의보다 더 시급한 과제들이 참여정부의 마지막 1년을 기다리고 있다. 환율불안, 한·미자유무역협정, 연금개혁, 부동산값 안정, 일자리 창출, 청년실업문제, 북핵문제, 강성노조문제 해결 등 시급한 국정과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따라서 민생을 포기하고 정쟁에 돌입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 될 공산이 크다.

    한국일보와 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1.7%가 조기 개헌 가능성을 부정했다. 응답자의 61.3%가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정략적 목적’을 가진 것으로 보았다. 결국 국민들은 개헌 제안이 ‘지지율 낮은 대통령의 노림수’요 ‘대선을 겨냥한 전략적 접근’으로 보고 있으며 나아가 임기단축 승부수를 띄울 가능성까지 내다 보고 있다.

    헌법을 개정하는 최종 권리는 어디까지나 주권자인 국민에게 있다. 국민은 어리석지 않다. 한나라당도 좌파정권 10년의 실정에 대해 절치부심(切齒腐心)하고 있다. 이제라고 개헌제안을 거둬들이고 민심에 복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