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 통일과 관련하여 많은 국민들이 북한이 붕괴되면 곧 남한 주도의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낙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아주 순진한 생각에 불과할 뿐이다. 북한이 붕괴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경우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국가이익이 강하게 충돌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적극적 개입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현재 중국의 국경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서남아의 인도, 동남아의 아세안(ASEAN), 중앙아시아의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세력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 지역은 모두 국력의 팽창을 시도하는 중국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국가이익이 극명하게 대치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들 지역에 이어 동북아의 한반도 특히 북한은 미국에는 중국 봉쇄를 위한 마지막 전략지역으로서, 중국에는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완충지대로서 사활적 이익이 결려있는 곳이다. 더욱이 중국은 자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에 미국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는 정권이 들어설 경우 중국 내부에 대한 민주화 바람과 조선족의 독립운동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와 같은 중국의 우려는 군사적으로 6·25전쟁 당시 중공군의 개입과 1961년 북한과의 자동개입조항을 담은 상호방위조약 체결 그리고 북한 탈북자 문제, 조선족 문제, 북한 내부 혼란 등에 대비하기 위해 2003년 9월 단행된 15만 정규군의 북한 접경지역 추가 배치와 같은 조치로 나타났다.

    또한 최근에는 정치, 경제적으로 '북한 끌어안기'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중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동북3성 개발도 북한에 대한 영향력 확장과 연계되고 있다. 2003년 10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가 발표한 동북3성 개발에 대한 가이드 라인인 '11호 문건', 2005년 5월 중국국무원이 발표한 동북3성과 북한 접경지역에 대한 개발 의지를 밝힌 '36호 문건'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최근 들어 중국 경제력이 북한 내부로 적극 확산되고 있는 현상이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투자는 과거 소비재 중심에서 최근에는 석유를 포함한 지하자원 공동 개발, 항만을 포함한 기간시설에 대한 투자로 확대되고 있다. 이는 북한의 붕괴 이후 북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증대에 대비하고 나아가 친중 정권의 수립을 위한 것일 수 있다는 점에서 포스트 김정일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 이전부터 북한의 붕괴에 대비하면서 김정일 정권의 교체를 하나의 방안으로 고민해왔다. 이제 중국은 인민해방군 내부의 세대교체라는 내부적 요인과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김정일 정권의 불확실성 증대라는 북한의 상황에 따라 김정일 정권의 유지와 교체라는 두 가지 가능성 중에서 점차 김정일 정권의 교체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느낌이다.

    가장 단적인 증거는 후진타오 중국국가주석이 북한 핵실험 당일 긴급 소집한 중국공산당 외사지도소조(外事指導小組)에서 했다는 지시에 잘 나타나고 있다. 미국 제임스타운재단 선임연구원인 윌리 람은 2006년 11월 8일자 일본 SAPIO지에 후진타오의 지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2006. 11. 20, 조갑제닷컴)

    "북한 핵실험 당일 후진타오는 자신이 책임자로 되어있는 중국공산당 외사지도소조를 긴급 소집하고 '중국의 경고가 무시됐다'며 격노했다. 후진타오는 이 자리에서 새로운 대응책을 지시했는데 여기서 나온 것이 '통일 한반도' 구상이다. 이는 김정일을 배제하고 한국과 북한을 통일해 새로운 국가를 창설하되 김정일 배제, 중국의 괴뢰정부 수립, 중국의 공작에 의한 통일 수립을 원칙으로 한다. 후진타오는 이미 김정일 배제 전략에 착수했다.

    김정일 배제 전략이 성공하면 중국은 친중국 후계자를 옹립하고 북한을 중국화 한 후에 최종적으로 한반도를 통일시킨다. 후진타오는 중국의 이러한 구상을 10월 13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제시하면서 동시에 한반도 통일정권 탄생의 전제조건으로 '미군이 북한 영내에 일보라도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점도 전달했다. 문제는 후진타오 구상의 성공 여부는 미국의 대응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만일 북한의 장래와 관련하여 중국이 후진타오 구상의 실현을 추구한다면 중국은 현재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3가지 '빅딜설' 중에 미국은 중국에 대해 '북한에 진주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중국은 북한에 친중정권을 수립하되 북한의 비핵화를 미국에 보장하는 방식의 시나리오를 선호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영토적 야심을 가질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영향력 확장보다는 테러리즘에 대한 대처가 중요해졌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있다. 또한 북한 김정일 정권의 교체에 대한 의지는 미국이 더 강하겠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에 있어서는 중국의 역할이 더 클 수 있다는 점에서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국경을 따라 광범위한 지역에서 국력의 팽창을 시도하는 중국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이 세력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이 단지 북한의 비핵화만을 조건으로 중국에게 북한의 친중정권 수립을 허용한다는 것은 일방적인 생각일 수 있다. 더욱이 중국에게도 대만의 핵무장이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안으로 거론될 수 있는 것이 북한과 대만을 맞교환하는 방식의 시나리오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북한의 장래에 대하여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타협의 공간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는 미국과 이 지역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려는 중국이 세력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한반도의 장래에 대한 어떤 방식의 타협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좌파정권이 해오던 대로 반미친중정책을 계속하면서 단지 어깨 너머로 지켜보아야만 하는 것인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