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9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진 논설위원이 쓴 시론 '정운찬, 제3의 대선 후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내년 대선의 수수께끼 중 하나는 '제3의 후보'다. 한나라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와 비(非)한나라 고건 정동영 김근태…. 이들 외에 누가 또 다른 깃발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치인 정치학자와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다.

    최근 여론조사 전문가 10명을 상대로 한 중앙일보 조사에서 그는 다크호스 1위로 꼽혔다. 며칠 앞서 김효석 민주당 원내대표는 "범여권 후보로 정운찬 총장 같은 사람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겨울 하늘에 연을 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정씨를 공개적으로 띄우는 이들은 더 있다. 열린우리 수도권 M의원, 국민중심 C의원 같은 이는 "한나라의 올드 페이스(old face)에 맞서려면 정씨 같은 뉴 페이스(new face)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 전 총장은 15일 저녁 기자들에게 "(대선 출마가) 여러 여건상 불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여권의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완전 국민경선제)에 나갈 것이냐는 문화일보 질문에 "절대 안 나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말이다. 한국 정치에는 말이 자신의 운명을 구속하지 못한 사례가 많다. 정치보다 자유로운 사생활이 훨씬 좋다고 했던 강금실씨는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됐다. "나는 정치할 체질이 못 된다"던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도 여당의 경기지사 후보로 뛰었다. 이제 정운찬의 운명은 자신보다 비한나라권의 흐름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15일 "나는 승산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decisive(결단력 있는)한 사람"이라는 말도 남겨놓았다. 뒤집으면 승산이 보이면 결단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가 'decisive'로 가는 길에는 많은 변수가 얽혀 있다. 우선 비한나라권이 통합신당이라는 멍석을 제대로 깔아야 한다. 멍석이 깔려도 고건 전 총리가 용수철처럼 다시 튀어오르면 정운찬 얘기는 줄어들 것이다. 정동영 김근태 강금실 진대제 같은 인물이 충격적인 급부상(急浮上)을 이뤄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도 저도 아니고 다른 사람도 없고 하면 비한나라 사람들은 슬슬 정 전 총장의 소매를 잡아당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손을 내민다고 모든 게 순탄하진 않을 것이다. 이회창 강금실 진대제 등 모든 뉴 페이스들은 발가벗은 채 시커먼 검증의 강물에 뛰어들어야 했다. 강물은 정씨에게도 입을 벌리고 있다.

    그의 최대 강점은 참신한 이미지다. 그는 경기고 서울대를 나왔으며 이 나라 최고의 지성이라는 서울대 총장을 지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상고(商高)시대와 극적으로 대비된다. 그는 총장 시절 노 대통령과 맞서면서 이미지에 각(刻)을 새겼다. 그는 경제학자다. 부동산과 경제에 대해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인다. 충청(공주)이라는 지역 배경도 보탬이 된다. 열린우리당 내에선 "호남은 어차피 비한나라이니 충청표를 장악해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그러나 이미지는 거꾸로 부담이다. 그는 대학총장 빼놓고는 현실적 관리 능력을 입증할 경력이 없다. 백면서생(白面書生)이 아니라 비전과 추진력을 갖춘 정치 지도자 감인지 검증되지 않았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것을 유권자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궁금하다. 그는 아버지가 사망한 외아들로 분류돼 군대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친아버지에겐 외아들이 아니다. 작은아버지에게 양자로 입적된 것이다. 사정은 합법적이라고 하지만 유권자들의 심리는 복잡하다.

    학창 시절 한때 그는 국회의원이나 고위관직을 꿈꾸었다. 양반 가문 출신이었고 어머니가 "자네, 우리 집안에 정승이 3대째 끊긴 걸 아는가"라고 자극을 주었다. 하지만 '3.1운동의 제34인'으로 꼽히는 스코필드 박사가 만류했다고 한다. "때가 많이 타는 정치권보다는 다른 영역에서 건설적 비판을 수행하라"고 충고했다는 것이다. 정운찬. 그는 과연 제3의 후보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