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박두식 정당팀장이 쓴 '정권에 밉보인 외교관의 퇴임'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3년 가까이 끌어온 청와대와 외교부 사이의 인사(人事) 갈등 하나가 최근 끝이 났다. 당사자인 장재룡 대사가 사표를 낸 것이다. 지난 1일 송민순 장관의 취임식 직후에 사표를 제출했다고 한다. 장 대사는 기자에게 “세상 공부 많이 했다”고 말했다.

    장 대사는 노무현 정부 출범 전까지만 해도, 탄탄대로를 달리던 외교관이었다. 외무고시 동기(3회)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과 더불어 1980년대 후반부터 우리 외교 대미(對美) 라인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외교부 미주국장과 워싱턴 정무공사, 외교부 차관보, 북핵 4자회담 한국수석대표, 프랑스 대사 등을 지냈다.

    그런 그의 커리어가 이상 기류에 휩싸이기 시작한 것은 2004년 1월 무렵이었다. 반기문 당시 청와대 외교보좌관이 외교부 장관으로 발탁되면서, 그 후임으로 장 대사가 물망에 올랐다. 반기문 총장 등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그의 청와대 입성은 실패했다. 이때부터 2년여에 걸쳐 외교부에선 그를 외교차관, 국정원 1차장(해외담당) 등에 거듭 추천했고, 그때마다 퇴짜를 맞았다. 마지막에는 외교부에서 “이 정도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장 대사와 비슷한 경력의 외교관이 가는 자리보다 낮은 규모 공관의 대사로 임명하자고 했지만, 청와대의 비토는 여전했다.

    여권 인사들과 외교관들의 말을 종합하면, 장 대사의 문제는 ‘정권에 밉보인 죄’다. 이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6개월여 만에 바뀌면서, 후임으로 장 대사가 ‘0순위 후보’로 올랐다. 프랑스 대사에 부임한 지 10개월쯤 됐을 때였다. 장 대사는 망설였다고 한다. 외교관 선·후배들도 만류했고, 장 대사 입장에선 정권 말 청와대 근무가 썩 내키지 않았던 것도 솔직한 심정이었다고 했다.

    바로 이 결정 때문에 그는 ‘야당에 줄 선 정치 성향의 외교관’으로 낙인찍혔다는 것이 외교부 내의 정설이다. 게다가 장 대사는 당시 야당 대선 후보와 같은 고등학교, 같은 대학 출신이다. 이 같은 몇 가지 정황을 바탕으로 청와대에서 ‘장 대사가 야당 후보에 줄을 섰다’는 판단을 내리게 됐다고 한다. 물론 장 대사 본인은 펄쩍 뛴다. 공식 행사가 아닌 자리에서 야당 후보를 개인적으로 만난 적도 없다고 했다. 반기문 총장을 비롯한 외교부 선·후배들이 나서서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장재룡 구명’ 운동은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실패했다. 한번 밉보인 장 대사를 계속 추천하자, 오히려 “사람이 그렇게 없느냐”는 식의 답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1600여 명에 이르는 외교관이 근무하는 외교부에서 장 대사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외교부 내 어느 누구도 장 대사가 이런 식으로 36년에 걸친 외교관 생활을 마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권에 관계없이 경험과 실무 능력 때문에라도 그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오히려 외교부에선 장 대사에 이어 “K는 안된다”, “L 대사도 겨우 살았다”는 등의 괴담이 돌고 있다. 현 집권 측은 정권 초반 청와대와 외교부 사이에 ‘자주파 대 동맹파’ 갈등이 벌어지자, 대대적인 외교부 손보기에 나서기도 했었다. 한 중견 외교관은 “이 정권처럼 숙련된 외교관들을 퇴로까지 막아놓고 내모는 것은 처음 봤다”고 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야말로 이 정권에서 ‘코드 외교’가 가능해진, 비밀의 열쇠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