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3일자 오피니언면 '동아광장'란에 이 신문 객원논설위원인 곽승준 고려대 교수가 쓴 '대선주자들께 고(告)합니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교수님, 저도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싶습니다.” 졸업한 제자가 오랜만에 찾아와 저를 보기가 무섭게 진지한 표정으로 한 말입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학교와 학과는 취직이 상당히 잘되는 곳으로 세간에 정평이 나 있습니다. 20여 년 전 필자가 대학 졸업반일 때는 여러 직장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고 어디로 갈까 고민하는 학과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교수가 된 뒤 지난 12년 동안에도 학생들의 취직 걱정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저는 정말 행복한 교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의 태평성대도 불과 4년의 노무현 정권 경제 실정(失政)으로 끝나 가는 것 같아 가슴이 무겁습니다.

    지금 대학가는 과거와는 정말 다른 큰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겐 민주화, 이념, 민족, 통일, 반미 등 과거의 어떤 주요 관심사보다 중요한 것이 졸업 후 진로와 취직입니다. 제가 있는 대학에선 그동안 총학생회장을 민중민주(PD) 계열과 민족해방(NL) 계열로 대표되는 운동권이 번갈아 가며 차지해 왔으나 올해엔 조직과 경험 등 모든 면에서 열세인 비운동권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팍팍한 현실이 학생들로 하여금 뭔가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감을 심어 준 결과겠지요. 하지만 젊은 열기가 넘쳐야 할 학생들이 점점 꿈과 희망을 잃고 있는 사실에 가슴이 아픕니다.

    이미지 선거 더는 안 통해

    국민의 관심 순위에서 부동산이 북핵 문제를 누르고 일등을 차지했기에 부동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현 정권이 부동산 정책의 최대 걸작이라고 자화자찬한 ‘세금폭탄’이 드디어 폭격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서울 강남을 비롯한 소위 ‘버블 7’ 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기계가 돈 세는 속도보다 빠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서민들은 평생을 모아도 집 한 채 마련할 수 없게 됐습니다. 조준은 강남 부자들에게 맞춰졌는데 건설경기 침체와 소비 위축으로 그들보다 더 고통을 받는 것은 아무리 봐도 일용직 건설노동자와 서민들인 것 같습니다. 정말 무차별 오폭이 아닌가요. 이제 국민은 다 압니다. 서민들을 위하는 것처럼 포장된 포퓰리즘 정책들이 결국 자신들을 더 못살게 한다는 것을. 현재 여당의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나오는 것을 보면 부정하지 못하겠지요.

    그러나 열린우리당 측 대선 후보자들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상대는 무기력한 한나라당입니다. 노 대통령에게 실망해 지지 대열에서 이탈한 많은 표가 현재의 한나라당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쪽으로 쉽게 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여당이 지금의 오만과 독선, 관념에서 벗어난다면 이탈 표를 다시 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깜짝쇼’ ‘한 방 정치’ 같은 정치 이벤트로는 안 됩니다. 특히 4년 전 톡톡히 재미를 봤던 이미지 선거는 더는 안 통합니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다시 시도해 보려다가 오히려 손해만 보지 않았습니까. 소도 한 번 빠진 우물엔 안 빠진다는데, ‘학습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국민은 물론이고 이제 한나라당도 그 정도에는 넘어가지 않습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자들께서는 최근 지지율이 높게 나와 무척 고무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대권 삼수생입니다. 대학 입시에서도 삼수까지 해서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기 십상입니다. 아마 2007년 대선은 한나라당이라는 정체성으로 치르는 마지막 선거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현재의 한나라당을 절대 찍지 않겠다는 비호감층이 최소한 국민의 30%나 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지금은 많이 앞서는 것 같아도 결국 본선에 가면 5% 차의 박빙의 선거가 될 것입니다. 정말 국민 속으로 파고들어가 민심을 보듬어 당내 예선보다는 본선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표심은 또다시 한나라당을 비웃을 것입니다.

    민심 보듬는 정책대결 펼치길

    2007년 여야 대선주자들께 감히 자신 있게 고합니다. 국민은 지난 4년 동안 충분히 학습했고 경험했습니다. 따라서 내년 대선은 철저히 정책 대결로 갈 것입니다. 국민은 꺼져 가는 성장 동력을 살려 일자리를 창출해 주고, 치솟기만 하는 주택가격과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해 무너지는 가정 경제를 튼튼히 해 줄 사람을 선택할 것입니다. 대권 경쟁에서 1년은 실낱같은 희망을 현실로 만들고, 당연한 것 같던 미래도 무위로 돌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2007년을 맞는 모든 대선주자의 건승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