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1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두우 논설위원이 쓴 <'양날의 칼' 인명진 목사>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반기업.반부자 정서가 넘쳐난다. 이념의 과잉이다. 기업이 경제발전에 공헌한 것을 인정해야 한다" "왜곡된 노동운동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자유시장주의자나 보수언론의 주장이 아니다. 1970년대와 80년대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큰 흐름을 주도했던 도시산업선교회(도산)의 리더 인명진(61) 목사의 말이다. 당시 정부는 "도산(都産)이 (기업에) 들어가면 도산(倒産)한다"는 말을 퍼뜨리며 인 목사를 네 차례 투옥했다.

    그런 인 목사가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직을 맡았다. "변절인가" "나이가 들면서 뒤늦게 정치에 욕심이 생긴 건가" 하는 의혹이 일었다. 오물을 정화시키겠다며 오물통에 들어간 사람치고 자신의 몸을 더럽히지 않은 이가 없는데 말이다. 일찌기 조지훈 선생도 '지조론'에서 이를 지적한 바 있다. 두 달간 그의 행적을 지켜보다가 그가 담임목사로 있는 구로 갈릴리교회를 찾았다.

    그는 뜻밖의 말을 많이 했다. "평생 정부와 기업의 반대편에 서있었지만, 한국의 산업화는 위대한 업적이었음을 인정한다" "북한 핵실험에 대해, 또 북한의 인권에 대해 이처럼 침묵하는 정권이 어딨나". "자유민주주의가 흔들리고,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애써 지키려 했던 가치관과 한국의 정통성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현실"을 바로잡는 방법으로 한나라당의 제안을 수락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안일하고 부도덕한 지금의 한나라당으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인 목사의 위상은 묘하다. 당 윤리위원장이지만 당원은 아니다. 한나라당엔 양날의 칼이란 의미다. 당의 이미지 변신용으로 그를 끌어들였을지 모르지만, 그가 "한나라당은 희망 없는 정당"이라며 선언하고 떠날 경우 당은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

    당에 지지 세력 하나 없는 인 목사에게는 이게 무기다. 인 목사의 좌절은 그를 영입한 강재섭 대표, 그를 추천한 김진홍 뉴라이트 전국연합 상임의장과 서경석 선진화국민회의 사무총장의 좌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광주 해방구' 발언을 했고 10.25 보선에선 무소속 후보를 지원한 김용갑 의원, 피감기관에서 골프를 친 국회 국방위 소속 3명의 의원 등을 징계하겠다고 그가 완강히 버틸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배수진을 친 그의 고집에 김형오 원내대표는 광주에서, 강 대표는 창녕과 광주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당 지도부가 봉사활동을 한다는데 징계 대상 의원이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 반발하던 의원들도 결국 지난주 모두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김 의원은 강 대표보다 한 시간 일찍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개별 봉사활동을 한 3명의 의원도 "국회 회기 끝나면 일주일 더 하겠다"고 하는 등 '성의'를 보이고 있다. "좌파의 칼로 보수를 위협한다"는 등의 비난 속에서 그의 한나라당 착근(着根)은 일단 성공한 셈이다.

    한나라당은 호된 시어머니를 만났다.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알고, 또 이를 활용해 뜻을 관철해가는 인 목사는 어떤 정치인보다 더 정치적이다. "의원들에게 '성질 더러운 인명진이에게 꼬투리 잡히면 골치 아프다'는 인식을 심어주기만 하면 1단계는 성공한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2단계로 그는 대선 경선 출마자에 대한 윤리 검증을 준비 중이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자들은 인 목사가 수문장으로 있는 윤리위의 검증 관문을 거쳐야 한다. "윤리위만으로도 한나라당을 확 바꿀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넘어야 할 고비가 있다. 특정 주자에 대한 편향성 시비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가까운 이재오 최고위원과는 87년 6월 항쟁 당시 국민운동본부에서 함께 활동했지만, 그 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의 영입을 이 최고위원이 반대했다는 후문도 있다. 그는 구체적 사유는 언급을 피했다.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정치적 중립성을 확신시켜줄 수 없으면 대선 국면에서 그의 정치 실험은 성공하기 어렵다. 그의 정치실험의 실패는 그의 인생과 한나라당의 실패로 귀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