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9일 김종혁 정책사회데스크가 쓴 '3김은 국민들 좀 내버려 두시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초등학교 때였다. 부모님이 밥상머리에서 두런두런 김대중(DJ).김영삼(YS), 그리고 김종필(JP)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걸 들었다. 그로부터 한 세대, 30년 이상이 훌쩍 흘러갔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3김 이야기를 듣는다.

    퇴근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초등학생에서 신문사 부장이 된 지금까지 3김은 나의 삶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한때는 희망, 어떤 때는 실망과 미움으로 언제나 내 주변에 머물렀다. 북한의 김일성이나 쿠바의 카스트로, 리비아의 카다피 같은 독재자가 아니라면 3김처럼 수십 년간, 수천만 명의 인생에 영향력을 행사한 경우가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3김의 인격과 능력이 너무나 출중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정적인 건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젊은 시절, DJ와 YS는 박정희를 뛰어넘기 위해 끊임없이 애썼고, 그만큼 성장했다. JP는 박정희 덕분에 컸다.

    가끔씩은 궁금하다. 역사가 박 전 대통령과 3김의 무게를 잰다면 추는 어디로 기울까. 요즘 서점가에선 그런 논쟁이 치열하다. 박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학자들은 열심히 책을 펴내고 있고, DJ를 칭송하는 책 역시 한두 권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적 평가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대학생 때 나는 박 전 대통령을 꽤 미워했었다. '부하한테 총 맞아 죽은 독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 들고 다른 나라도 다녀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경부고속도로가 없었다면, 포항제철을 만들지 않았으면, 새마을운동과 '잘 살아 보세'의 구호가, 수출자유지역.그린벨트.산림녹화사업 같은 게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 박정희의 경제정책에 DJ와 YS는 한사코 반대했었다. 이제 와서 그걸 비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박정희 신화'의 반대편에는 정치적 탄압과 여공들의 눈물, 인권 유린과 철거민들의 한숨, 지식인과 대학생들의 좌절과 저항이 분명히 존재했었다. DJ와 YS는 당시 그들에겐 희망이고 미래였다. 따라서 그런 반대 역시 의미 있는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다. 돌이켜 보면 박정희와 DJ.YS, 그리고 JP는 나름대로의 역할을 통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만들어 온 거인들이다. 덩샤오핑의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를 흉내 내 말하자면 "공과가 있지만 공이 더 많다"다.

    하지만 최근 3김씨의 행적을 보면 나의 판단이 잘못된게 아닌지 걱정이 된다. DJ는 10월 29일 8년 만에 목포를 방문했다. 거기서 '무호남, 무국가'라고 썼다. 정치적 위기 때마다 호남을 찾았고 그때마다 화려하게 부활했던 DJ다. 그는 이날 "정치를 빼고 다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방문 자체가 정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YS와 JP는 이런 DJ가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두 사람도 만났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잘한다는 국민은 거의 없다. 사석에선 더한 욕설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들이 모여 현직 대통령의 정신 상태를 언급하는 것 역시 정상이라고 하긴 어렵다. 3김과 함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움직이고 있다. 그에게 "총재님, 한 번만 더"라며 정계 복귀를 읍소하는 이도 적지 않다고 한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런 분위기라면 60세에 불과한 노 대통령도 퇴임 후 다시 정치 일선에 복귀하지 말란 법도 없다.

    한 국가에 여러 명의 전직 대통령이 생존해 있다는 건 축복이다. 국가의 영속성, 평화적 정권교체의 의미를 그보다 웅변하는 건 없다. 하지만 역사의 평가를 기다려야 할 전직들이 또다시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판을 뒤흔들기 시작한다면…. 그건 재앙이다.

    우선 3김씨께 당부드린다. 국민도 수십 년간 할 만큼 해드렸다. 그러니 이젠 호남.영남.충청을 자유롭게 해주시라. 정치에서 손을 떼시라. 흘러간 과거가 현재와 미래의 뒷다리를 잡는 전례를 만드시려는가. 역사의 죄인이 되시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