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이켜보면 60, 70년대의 조국 근대화과정은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불굴의 역사창조과정이었다. 국내의 열악한 산업현장은 물론 사우디 등 중동지방의 열사바람 속에서, 그리고 독일의 탄광과 병원, 월남의 정글 속에서 겪은 그 고통을 오늘날의 신세대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아시아에서 ‘네 마리 용’으로 확실히 떠올랐고, 동남아 각국이‘한국을 따라서 배우자(Look East Policy.)’는 정책을 세워 달려오기 시작했었다. 심지어 중국의 등소평 주석도 생전에 한국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모델을 중국 경제발전의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문했었던 것이다. 그 같은 주문은 지금도 유효하여 중국 공직자 35만명이 한국의 근대화를 성공시킨‘새마을운동’을 배우러 오고 있다.

    그런데 그토록 어렵게 쌓아올린 조국근대화의 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즉 80년대 후반부터 우리가 자만과 사치에 빠져서 낭비하다가 그만 스스로의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다. 

    자본주의를 성장시키려면 그 정신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즉 근면하고, 절약하고, 협동하고, 제 욕심을 줄이는 금욕, 그리고 노동의 땀을 소중히 알아야 자본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발전하게 된다. 이것을 잃으면 넘어지고 마는 것이 자본주의체제이다. 그러니까 자본주의는‘주의’라는 정신이 우선이고,‘자본’은 그 다음이라 하겠다.

    서양의 선진국들은 바로 이러한 정신자산을 통해서 오늘날의 부흥을 가져왔고, 일본도 그 정신을 배워 2차대전의 잿더미에서 일어나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정신자본을 소홀히 하여 1996년 이래 나라 경제를 어려운 상황으로 빠뜨렸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우리는 과도한 성장일변도의 경제정책, 일본을 모방하는 모방경제의 한계를 인식하고 재빨리 국가경제 운용시스템을 바꿨어야 했다. 한국식의 자본주의 국가경영 모델을 만들었어야 했다는 말이다.‘한강의 기적’에 도취해 있지 말고 국가 행정시스템과 산업구조를 재조정해서 다가오는 위기에 대처했어야 하는데, 시기를 상실하여 90년대 중반 이후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던 것이다.

    90년대 초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가치의 상위에는 이른바 민주화가 자리를 차지했다. 정치인들조차도 국가의 운명을 개척하는 데 매진하기보다는 국민의 인기에 영합하여 민주화를 만병통치의 정책으로 내몰았다. 특히 일부 386세대(60년대에 태어나고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대를 말함) 정치인들은 기성질서에 대한 도전과 파괴가 민주정치 발전을 위한 첩경인 듯 생각하고 행동했다.

    국고(國庫)는 점점 비어 가는데 서로 싸움만 하는가 하면 한 쪽에서는 흥청대기만 하다가 국제사회로부터 호된 신고식을 당하게 되었다. 다름 아닌 WTO와 OECD에 가입하도록 강요받은 점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국제적인 룰(rule)에 맞도록 사회와 체제를 발전시켜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으로 평가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가 잘 나서 그런 국제기구에 들어간 것으로, 또는 마치 선진국이라도 된 양 착각하고 기고만장해 으시대면서 낭비를 일삼아 그동안 축적했던 부를 소진해버렸던 것이다. 96년도에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가 넘었다고들 기뻐했지만, 사실 1인당 실질 구매소득은 6000 달러 수준에 불과했었다.

    오죽하면 외국 언론이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트렸다.’고 비아냥댔을까. 그런데도 스스로를 돌아볼 줄 모르다가 급기야 IMF(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국정을 꾸려나갈 수가 있게 되고 말았다.

    지난날의 잘못을 다시 범하지 않으려면 과거의 쓴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자세로 미래의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위기관리 대책이다. IMF구제금융을 받던 시절, 우리 국민은 혼연일체로 위난에 대비했었다. 돌 반지라든가 결혼반지를 빼내서 판돈이 22억 달러, 에너지 절약으로 아낀 80억 달러, 불필요한 사치품 수입을 줄여서 약 100억 달러를 절약하여 200억 달러를 모아 한국은행 금고를 채워줬던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대 지금은 과연 10년 전과 다른가. 아니다. 그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을 정도로 우리는 어려운 상황이다. 연간 500억 달러의 에너지를 수입해야 하는 우리는 국제유가의 오름에 따른 원자재 부담에 허리가 휘고, 수출의존율이 70%에 달하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 부담을 상시적으로 안고 있다. 이런 어려운 경제위기 시기에는 그 어느 때보다 공직자들을 비롯한 전 국민이 바른 자본주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